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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을  재편하였으나  타케  신부는  대구에  남는다.  그는  7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편이었으나  난청이  생겼다.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대신학교  한편
                  에서  지냈다.  타케  신부는  다른  선교사와는  달리  ‘식민지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선교사’임을
                  보편적인  선교  방식으로,  그의  온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15)



                    포리  신부가  일본에서  선교사로서의  삶보다  식물  채집가로서  역할이  더  강하게  부각되는
                  것은  포리  신부  자신의  고백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당시  일본에서  선교가  잘  이루어지지  않
                  았기  때문이다.  포리  신부에게는  선교사로서의  삶보다  식물학자로서의  일이  더  우선이었고,
                  그것은  일본의  근대화로  인한  선교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반면에  타케  신부가  식물  채집가
                  로서의  일보다는  선교사로서  평생을  수행한  데에는  조선인의  따뜻한  마음과  소박한  삶의
                  자세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에밀  타케  신부의  선교  사목은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었던  시간
                  과  공간,  즉  마산이면  마산,  홍로면  홍로,  섬이면  섬,  한라산이면  한라산을  중심으로  선교사
                  로서  그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본질로  살아갔던  것이라고  본다.  에밀  타케  신부는  선교사
                  로서  평정과  인내  속에,  또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아름답고  소중한  식물들을  관찰하고  채집

                  하며  ‘치유의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16)


                    에밀  타케  신부는  한국에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의  어떤  선교사보다도  독창적인  민낯을
                  가진  선교사이다.  에밀  타케  신부는  한일병합  전  1898년에  입국해서  한국전쟁  2년  뒤인
                  1952년에  조선  땅에  영원히  묻혔다.  에밀  타케  신부는  대단하고  대담한  조선의  선교사로,

                  조선인들에게  친근감을  주며  섬세하고  조용하게  조선에  융화되었다.  타케  신부는  식물  채집
                  가라는  괴짜  선교사가  아니라  평생을  조선의  진짜  선교사로  살았던  인물이다.                      17)

















                  15)  에밀  타케  신부는  하느님뿐이라는  마음으로  선교사로서  온갖  두려움과  환난을  극복하고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에밀  타케  신부는  1897년  9월  27일  한국으로  가야  할  운명이  미리  정해진  채
                     서품을  받은  후,  식물  채집만  했던  식물분류학자로  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뿐이라는  신앙’으로  선교
                     의  일이관지로  한라산을  오르며  식물  채집을  했을  것이다.  베르만의  탐사나  선교사들의  채집  역시  미
                     지의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의  박물학  연구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지만  에밀  타케  신부의  활동은  제국
                     주의의  식민지  선교활동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물론  타케  신부가  채집한  수많은  표본은  현장  선
                     교활동을  위해  일부  매각되기도  했다.

                  16)  앞의  책,  p  165-244  참조.
                  17)  위의  책,  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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