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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서로 용서하고 있지 못한 상태의 하느님 나라를 상정하지 못한다. 용서하지 못함
은 사랑의 결핍과도 같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용서는 성령의 충만함과 온전한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실현을 보여준다. 충만을 향한 결핍의 상태와 완성을 향한 불완전의 상태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상처를 야기한다. 따라서 충만함과 완성을 향한 과정은 곧 용서의 과정
이며 이는 성령의 사랑 속에 비로소 실현된다. 잘못으로 인한 벌은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용서와 연결되어 있다.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을 하느님은 용서하지 않으신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용서는 인간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범죄에 대한 죄책은 죄의 인지와 고의적 실행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이나 행위에 의지적 자유가 완전히 결여된 경우 죄책이 면제된다. 그래서 인간
은 하느님과 인간 이외의 피조물에게 죄를 범하고 죄책을 짊어질 가능성이 있으나 완전한
선이신 하느님과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인간 이외의 피조물에게는 죄를 범하고 죄책을
짊어질 가능성 자체가 없다. 오직 인간만이 죄가 불가능한 인간 이외의 피조물에게 죄를
범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죄책을 지닐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용서가 하느님의 용서에 연
계된다면 인간이 저지른 범죄는 또한 하느님과의 관계와 연결된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 이
외의 피조물에게 죄를 범하는 것은 곧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범죄를 형성하고 죄책을 짊
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피조물에게 지은 범죄에 대해서도 용서를 청하고 죄책
을 보상했을 때, 곧 죄로 인해 훼손된 정의를 회복시켰을 때,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수 있
는 전제 조건을 이루게 된다.
사)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Καὶ(그리고) εἰσενέγκῃς(이끌지) ἡμᾶς(우리를) μὴ(마시고)
εἰς(~안으로) πειρασμόν(유혹)
유혹에 빠지지 않게 청하는 것은 유혹에 대한 분별력과 용기의 영을 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이다. 165) 성령께서는 인간의 내적 성장에 필요한 ‘시련’과 죄와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유
혹’을 분별하도록 하시며 동시에 유혹을 ‘당하는 것’과 유혹에 ‘동의하는 것’을 분별하게 하
신다. 166) 하느님께서는 극복하지 못할 시련을 주지 않으시며 이겨낼 길도 마련하신다. 그러
나 유혹의 대상은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이지만’(창세 3,6) 실제로 그 열매는 죽음이
다. 167) 하느님께서는 늘 깨어 있는 기도 속에서 끝까지 항구하게 유혹자에 대항하여 승리
를 거두게 하신다. 168)
165) CCE, 2846, 참조.
166) CCE, 2847, 참조.
167) CCE, 2848, 참조.
168) CCE, 284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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