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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로 본당 등에 식재했다. 제주에서 온주밀감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이웃에 분양하면서
감귤 나무가 확산되었다. 에밀 타케 신부가 본격적으로 과수원을 조성하여 감귤 농사를 시
작하진 않았지만 온주밀감나무의 시험적 식재와 이의 농가 분양을 통해 제주의 모습과 제
주인의 삶을 전적으로 변화시킨 감귤 농사가 시작된 것만은 분명한다.
왕벚나무가 없는 일본이나 감귤나무가 없는 제주는 상상할 수 없다. 제주 자생 왕벚나무
가 일본으로 건너가 식재되었으며, 일본의 온주밀감 나무가 제주에 들어와 제주인의 삶의
모습을 전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밀접하게 식물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매주 좋은 사례다. 감귤나무는 제주인에게 단순한 과실수가 아니다. 늦가을
에서 초겨울로 접어들면 산남지역 제주사람들뿐만 아니라 제주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감
귤 수확에 여념이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감귤의 생산과 수확과 유통과 감귤을 재료로
하는 제품의 생산 및 판매 과정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곧 많은 제주인이 감귤과
함께 감귤로 인하여 살아 온 것이다. 감귤 농사를 짓는 많은 제주인의 한 해는 감귤의 성
장과 흐름을 같이 한다. 특별히 감귤의 수확은 제주인의 공동체적 삶의 성격을 형성하였다.
감귤 나무가 제주인의 삶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감귤 나무를 제주인 앞의 놓인
하나의 무감각한 대상으로서의 ‘그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감귤 나무는 제주인에게 인격
적 주체로서의 ‘너’이며 삶을 함께하고 생계를 지켜준 ‘가족’이다. 에밀 타케 신부가 받아서
전해 준 감귤 나무를 통해 우리는 식물인 나무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인간과 나무가 더불어
살아가며 인간이 나무를 변화시키고 또한 나무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관계 속에 있음
을 깨닫는 생태적 영성을 확인하고 체험하게 된다. 또한 감귤나무와 제주인이 맺는 이러한
관계에 대한 영성적 깨달음은 다른 농작물뿐만 아니라 돼지와 소 그리고 자리 돔과 갈치
등의 동물들이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 역시 한 아버지인 하느님 아버지
로부터 나온 형제자매들로서 그들에 의지해 우리가 먹고 살아왔음을 느끼고 감사하게 한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가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에밀 타케 신부와 포리 신부는 함께 한라산에서 채집 활동을 하면서 식물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고, 이러한 감수성은 성령
의 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신부는 일본과 제주에 떨어져 살면서 서로 다른 식물
들을 서로에게 선물했고 이 선물들로 인해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변화되어 갈 것이라 희망
하였을 것이다.
2) 창조된 세상에 대한 영적인 시선
에밀 타케 신부는 한라산에서 식물의 표본을 채집해 유럽 학계에 알렸다. 특별히 제주에
서 머물렀던 13년 동안 1만 점 이상의 식물 표본을 채집해 유럽과 미국, 일본의 식물학자
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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