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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여  있다.  따라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태도를  회복시켜  줌으로써  인간의  삶  안에서  대

                  자연에  대한  ‘순응’의  노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자연에  대한  ‘정복’이란  개념  자체를  포기
                  하고  생태계와  인간이  도전과  정복의  관계가  아니라  ‘조화와  상생’이라는  균형의  상태로  나

                  아갈  수  있을  때,  생태계의  회복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77)


                        4) 종교적  사유와  이성적  사유의  불균형



                      생태계의  파괴는  서구인이  종교적  사유를  잃고  이성적  사유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
                  하면서  급격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  사유와  이성적  사유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

                  하고  지탱해주며  인간의  삶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준다.  이성적  사유가  종교적  사유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거나,  또한  이성적  사유가  올바른  종교적  사유의  조명으로  이끌리지  못하게
                  되면,  인간의  삶은  올바른  방향성을  찾지  못하게  되고  사상적인  불균형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178)

                    따라서  지나치게  이성적  사유에로  치우쳐  있는  현대인에게  다시  종교적  사유의  빛을  비
                  출  필요성이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의  철저한  신앙  정신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에  종교

                  적  사유의  생명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희랍  철학의  이성적  사고를  통해  자신들
                  의  신앙을  체계화시켰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안에서  신앙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세계적
                  인  보편  종교로서  세대를  초월하며  지속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성적  사유에로  치우친  불
                  균형  상태에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교가  신앙과  이성의  균형을  이루는  본보기를  보여

                  주면서  다시  종교적  사유의  빛을  비추어  줄  수  있을  때,  현대인들은  다시  균형  잡힌  종교
                  적  사유와  이성적  사유의  시각으로  생태계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적

                  균형  상태에서  생태계  회복을  위한  인류의  노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79)




                    3. 결문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유  전통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다양한  시각으

                  로  바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자연이  온전히  정신적인  것이든  아니면  물질적인  것
                  이든,  정신적인  어떤  것을  담지하고  있든,  아니면  초월적인  어떤  존재의  은총  아래에  있든,
                  그것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이든,  아니면  자동기계이든,  그것들에  상관없이  인류에게  있어서

                  자연은  항상  ‘생존의  터전’이었다.  시초부터  인간은  자연  안에서  생존해  왔으며  그  안에서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왔고  그러면서  진화해  왔다.                 180)


                  177)  위의  글,  p.  49.
                  178)  위의  글,  p.  49,  참조
                  179)  같은  글,  p.  50,  참조.
                  180)  같은  글,  p.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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