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taquet_symposium
P. 30
“저는 하논에서 5리 떨어진 곳에 있는 홍로에서 건축 중인 집을 한 채 사서 그곳에 정착
했으며, 제 사람들은 헛간에서 자는데 여름에는 별로 불편하지 않습니다. 이 집이 다 지어
지고 나면 제게 2천 냥이 필요할 것입니다.” 60)
“저는 하논에서 5리 떨어진 홍로라는 큰 마을에 대지가 넓은 집 한 채를 샀습니다. 땅이
넓어 1,300냥이나 주었는데 집수리가 끝나면 총 비용은 적어도 2천 냥이 될 것입니다. 제
집과 미사를 드리는 사랑채의 수리는 거의 끝났으며 아직 건물 두 개가 남았는데 하나는
앞으로 지어야 할 소성당 건물입니다. 하논에 있는 집의 재목을 쓸 생각이었지만 단지 들
보 몇 개만 쓸 수 있었을 뿐 나머지는 불에 태워야 할 것들입니다. 주교님께서 이 집 값과
수리비용 그리고 건축비를 대주신다고 한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61)
홍로본당의 초가성당 앞에 서있는 타케 신부 (한라일보 기사자료 인용)
5. 교회의 복구
홍로로 성당을 이전한 후 타케 신부는 홍로를 중심으로 교회를 복구하는 데 전력을 기울
였다. 우선 타케 신부는 불량 교민에 대한 자체 선별과 관권에 의한 처리 원칙을 내세워
교회 정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곳(정의군)에는 신자라고 자칭하며 이교도들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불한당들이 있습니
다. 그들 중 대부분은 신부들 집(성당)에서 쫓겨났으며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하며 자기들
의 부모나 형제들이 지난해 학살당했다는 핑계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돈을 갈취하고 있습니
다. 저는 벌써 그들 중 여러 명을 (정의)군수에게 보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들 중 한 명
은 정의군수에게 보내어 얼마간 그의 보호 하에 두어 달라고 간청까지 했습니다.” 62)
60) 「뮈텔문서」, 타케신부의 1902년 7월 20일자 서한.
61) 「뮈텔문서」, 타케신부의 1902년 9월 4일자 서한.
-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