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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현실에 동참한 세 신부

[8.15 광복절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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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패트릭 도슨 신부, 어거스틴 스위니 신부, 토마스 D. 라이언 신부. (사진 출처 = 국가보훈부 홈페이지)


8.15에 떠오르는 안중근 그리고 교회

올해는 광복 79주년 그리고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대축일 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안중근 토마스를 떠올렸다. 조국과 하늘이 부여한 사명에 충실했던 그에게서 승천의 의미를 되새겼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다 보면 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 주교는 안중근을 살인자라 명하며 성사를 허락하지 않았고 이를 어긴 빌렘 신부를 징계했다.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이 안중근 추모 미사를 집전하고 사실상 그를 복권하기까지 교회는 안중근을 신앙인 토마스로 자랑스레 부르지 못했다.

항일운동사에서 천주교의 활동은 이웃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보인다. 특히 3.1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에 천주교인이 없다는 사실과 만세운동에 참여하려는 신자들을 종교 지도자들이 공공연하게 막았던 일, 1930년대 후반 신사참배를 허용한 것은 뼈아픈 일이다. 물론 천주교는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그중 잘 알려진 안중근 토마스와 그 일가,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제주 출신으로 만세 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른 최정숙 베아트리체, 고수선 엘리사벳, 강평국 아가타 세 사람도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그 외에도 많은 교우가 교회의 반대에도 조국을 위해 나섰다.

교회 나름의 사정은 있다. 18세기 후반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래 대박해를 네 번 겪었다. 조선에서 신앙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건 일이었다. 당시 교회 지도층에게는 조선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보다 일제하에서 안정적으로 포교하고 교우들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겁한 변명입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표면으로는 교회를 보호할 수 있었겠지만 교회가 진정 함께해야 할 조선 사람들을 참으로 살릴 수는 없었다. 교회는 식민지 조선의 아픔과 독립을 향한 갈망을 들여다보지 못했고 외면했다. 교회는 조선을 일본의 한 부분으로 보았다. 타국을 침탈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식민지화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 제국주의의 기본 노선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괜히 광복절을 맞아 부끄러워진다. 한 생애 예수를 따랐던 어머니 마리아의 천상 올림의 의미는 현재 어떤 의미가 되는 걸까. 일제강점기 민족과 함께 숨 쉬며 투쟁한 신앙 선배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가려진 듯하다.

항일 의식을 고취한 세 외국 신부

여기 우리의 소중한 선배들이 있다. 국가보훈부에서 2024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패트릭 도슨, 어거스틴 스위니, 토마스 D. 라이언 신부! 이들은 손파트리치오(1905-89), 서아우구스티노(1909-80), 나토마스(1907-71)라고 불렸다. 세 신부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한 사실이 인정되어 1999년 광복절에 건국 훈장을 받았다. 이것은 천주교 신부로는 최초의 서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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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1999년 세 신부를 대신해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오기백 신부가 건국훈장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변방의 소식', 성골롬반외방선교회, 2000)
(오른쪽) 2000년 나토마스 신부가 받은 훈장증. (사진 출처 = 서귀포 성당 100주년 기념 책자)

이들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제주에 파견된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첫 사제들이다. 세 신부가 제주에 당도했던 시기는, 일제의 폭압이 날로 심해지던 1934년 봄이었다. 제주도는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 전쟁을 거치고 해방을 맞기까지 참담한 지경에 놓여 있었다. 특히 태평양 전쟁으로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를 최후의 결전 기지로 삼으면서 제주의 민초들은 기지 건설에 강제 동원되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교회까지 일본이 점령하여 미사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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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처음 파견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들.

(사진 출처 = 박재형, "제주복음화의사도들-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님들", 천주교 제주교구)


제주 성당과 서귀포 성당에서 사목을 하던 세 신부는 중일전쟁의 상황, 알뜨르 비행장과 우도의 군사기지 확장과 관련한 정보를 여러 루트로 알게 되었고, 사목자로서 이 사안이 조선과 교회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서로 의견을 공유했을 뿐만 아니라 본당(성당) 교우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하였고 일본이 승전하리라는 소식은 가짜며 일본의 전황 보도는 부풀려져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제주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을 외국에 전하고자 영국 언론에 정보를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적극 세계 정세를 읽어 가며 조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우들에게 조언하였고 일본의 패망과 조선 독립의 가능성을 설파했다. 교우들은 독립에 대한 희망에 불탔다. 그들이 남겼다고 알려진 말이다.

“우리 천주님은 천황보다 위대하시다” , “중일전쟁이 장기화하면 일본은 패전할 것이다”
“일본의 승전보는 가짜다” , “조선은 죽지 않았다. 우리 조국 아일랜드처럼 독립할 것이다”
“일본어를 배우긴 하되 쓰지는 말라”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 - 목숨을 잃더라도 함께

일본은 1941년 말, 신부 3명과 교우 30명 정도를 체포했다. ‘일본의 패망 주장 , ‘일제 군사기지에 대한 기밀 누설’ 등이 이유였다. 일본은 반일, 항일 활동에 대한 증거를 이야기하고 관련자들을 고발하라고 고문했다. 1942년 10월 광주지방법원 재판에서 국방 보안법 위반, 군기 보호법 위반, 일본 천황에 대한 불경죄로 실형 선고를 받았는데, 손파트리치오 신부가 징역 2년 6개월, 서 신부와 나 신부가 징역 2년이었다. 신부들과 신자들은 구속됐고 성당도 폐쇄됐다. 나 신부는 옥중에 병이 나서 출옥했고 서 신부는 형기를 마치고 나왔다. 같이 잡혔던 교우 중 한 명은 결국 옥사했다. 손 신부는 감옥에서 광복을 맞았다.

해방 이후 기쁨도 잠시, 1948년 4.3사건이 일어난다.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무죄한 민초들이 스러졌다. 제주 교회는 두 성당 모두 읍내에 있어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신부들은 4.3의 평화로운 해결을 바란다는 일관된 입장을 보였고,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 소신을 밝히기도 했으며 미군정과 교류했다. 또한 1948년 4월 28일 김익렬 경비대 9연대장과 무장대 김달삼과의 평화협정 과정에서 이를 연계하는 다리 역할도 했다. 김익렬 연대장의 유고록에 “(평화협정을 맺는 과정에서) 그리하여 나의 비밀참모 역할을 하게 된 인물들은.... 읍내 천주교 신부와 몇몇 신자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 속 천주교 신부는 연대를 고려했을 때 제주 성당에 주임으로 있던 서아우구스티누스 신부다. 서 신부는 서울교구에 4.3의 상황을 전하면서 사망자 수와 교우들의 피해를 알렸다. 1950년에 있었던 제주도 유지들의 인민군환영위원회 결성 사건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도 손파트리치오 신부와 나토마스 신부가 직접 나서 군 관계자를 만났다. 이 사건은 유지급 인사 16명이 계엄사령부에 연행된 충격적 사건으로, 조작으로 밝혀졌다. 이후에도 세 신부는 4.3과 잇따른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제주 사람들과 피난민들을 돌보고 ‘가톨릭 구제회’를 통한 구제 사업, 신성학원 운영 등의 교육 사업에도 헌신적으로 뛰어들었다.

항일에 미온했던 교회의 흐름과 다르게 손 신부, 서 신부, 나 신부는 적극 항일운동을 했다. 신부들의 조국 아일랜드는 17세기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916년 부활절에 독립을 선포하며 봉기했고 1921년 자치를 얻었다. 독립 전쟁에서 아일랜드의 사제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당당히 민중에 편에 서서 함께 투쟁했다. 세 신부가 속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도 민중과 함께하는 것을 강조했다. 설립자 갤빈 주교는 내란 중이던 중국에 진출한 회원들에게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하기 위해 목숨을 잃더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남으라고 이야기했다. 제주에 파견된 세 신부도 같은 마음이었다. 독립을 원하는 조선인의 마음을 깊이 이해했고 식민지 상황에 있는 조선을 안타까워했으며 자신들이 만나는 제주의 교우들에게 진실을 전하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려 했다. 붙잡혀 감옥에 갇혀서도 꿋꿋했다. 그저 함께하려고 했고 해야 할 바를 행했다. 그들이 공경하는 성 골롬반이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가 되기로 작정하고 민중의 삶 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서귀포 성당에서 만난 나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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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성당 입구에 정면에 걸린 역대 주임신부 사진 일부. 왼쪽에서 세 번째가 나토마스 신부다. ⓒ서귀포 성당 부윤보

필자의 본당은 서귀포 성당이다. 성당 입구 역대 주임신부 사진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보좌신부였던 서 신부님의 사진은 없었지만 나토마스 신부님의 사진이 보였다. 인자한 웃음이 반가웠다. 성당 전시관에도 들렀다. 한편에 그가 입었던 붉은색 제의가 남아 있었다. 강렬한 붉은색이 그의 뜨거운 마음을 대변하듯 빛났다. 서귀포 성당에서만 21년을 보냈던 그는 유언으로 “나는 죽으면 서귀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가시머리 동산(서홍동)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나 토마스 신부님은 그렇게도 사랑했던 서귀포의 품에서 잠들었다. 시간이 지나 1995년 황사평 성직자 묘역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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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서귀포 성당 전시관에 진열되어 있는 나토마스 신부가 1937년 순교자 축일에 입었던 제의. ⓒ강소진.

(오른쪽) 나토마스 신부의 장례 미사. (사진 출처 = "서귀포 성당 100주년 기념")


“성체로 생명이 되신 주님, 오늘도 저희의 부족함을 의탁하며 비오니, 성모님과 함께 저희 모두가 또 하나의 성체가 되어 제주의 현실에 동참하고 참된 형제애로 서로 친교를 나누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봉헌된 저희의 소명을 잃지 않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시노드를 향한 제주교구 하느님 백성 가족 기도’ 마지막 단락

패트릭 도슨 신부, 오스틴 스위니 신부, 토마스 D. 라이언 신부는 상기 기도의 내용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었다. 스승 예수께서 그러했듯 충실한 제자로서 조선 그리고 제주의 현실에 깊이 동참하여 가난하고 척박한 제주, 일제 강점하에 고통받는 제주, 전쟁과 공권력으로 희생당한 제주, 자유롭게 신앙할 수 없는 제주를 가슴 아파하며 형제로서 다가가서 친교를 나누었다. 말씀을 현실 속에 녹아내며 교우들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봉헌된 소명을 충실히 살았다.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 신부는 나에게 부끄러워하기만 해선 안 된다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태우고 모든 것을 녹여야 하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의 사명이 아직 남아 있다. 패트릭 도슨, 어거스틴 스위니, 토마스 D. 라이언 신부가 그 길을 밝혀 줄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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