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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 소공동체”

  드디어 제16차 주교 시노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제1회기, 2023년 10/4–10/29, 제2회기 2024년도 10월 예정) 이번 주교 시노드를 시작하면서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개막미사를 통해 시노드가 ‘정치 모임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모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노드가 ‘양극화된 의회’가 아니라 ‘은혜와 친교의 장소’이며, “시노드의 주인공은 성령” 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이지만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물질적인 발전을 위해 모인 이익 집단도 아니고, 정치적인 이유로 모인 정당도 아니며, 어떤 이념이나 사상 때문에 모인 사회단체도 아닙니다. 교회의 생명은 하느님입니다. 곧, 성령의 힘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얼인 성령이 교회의 영이요, 혼이며 생명입니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재화는 풍요하나,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우리 시대의 현재 상황을 성령의 활동속에 바람직한 교회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소명이 우리에게 촉구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 17)”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그동안 친교와 참여, 사명을 주제로 하는 시노드 과정을 통한 시노달리타스 체험 속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구성하는 요소로 인식될 수 있는 몇 가지를 확인시켜 줍니다. 

  

  1.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세례성사로 받은 공통된 품위를 인식하며 함께 가는 교회입니다. 

  세례성사는 모든 신자를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 가족이 되게 하며, 따라서 그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입니다. 그래서 친교는 교회 내 구성원의 어우러짐에 그치지 않고, 인간 실존의 모든 차원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육화하게 하는 사명을 띠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모든 본당 공동체는 먼저 하느님 말씀을 첫 자리에 두고 스스로 복음화 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우상에 맞서 주님을 충실히 경배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각성을 지니고 실천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2.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경청하고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이는 곧 말씀의 경청, 사람들 사이의 상호 경청 그리고 교회 공동체 간의 상호 경청을 통하여 성령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실용적인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과 만났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경청의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신앙적이며 교회적인 깊이를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형태의 경청은 특히 그 목소리가 무시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도록 초대합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귀 기울여야 하는 대상으로 우선 미래 세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과 청년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유대가 클수록 교회 공동체의 미래가 밝습니다. 다음으로 교회는 어릴 적부터 신앙의 가치를 공동체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젊은이들의 신앙 체험 공간을 확대하고, 활기찬 공동체의 역량을 통해 ‘신앙이 기쁨’이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기회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이유로든 교회에서 멀어진 쉬는 교우들을 다시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으로 불러 모아 새롭게 신앙생활의 활력을 되찾아 주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신자들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신앙을 북돋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3.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겸손하기를 원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아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저지른 잘못들 속에 선교 역사의 문화 우월적 태도와 정체성을 벗어난 윤리적 병폐와 같은 것을 교회가 저지른 잘못으로 성찰하고, 환경파괴에 따른 사회경제적 공동책임, 권력과 양심의 남용 등의 교회와 결부될 수 있는 위기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참회와 회심의 길로 부르는 초대입니다. 이런 회심의 과정 속에 겸손과 배움을 토대로 한 성령 안에서의 활동은 이제 교회의 선교 활동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신앙 공동체의 살아있는 표지들로써 교회의 성숙한 생명력을 자연스럽게 외부로 확장시켜 나아갑시다. 그동안 사회복지와 환경운동,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활동 등으로 간접선교에 치중하기도 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직접 선교를 통해서도 자주 주변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으로 인도하고, 복음의 진리에 맛들이도록 하는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새로운 열정’,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으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새복음화’의 기쁨과 진리를 나누고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교를 독선적으로 강요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겸손과 사랑으로 세상을 복음화하고자 하는 자세로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 역시 자신이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로써, ‘불안’을 가진 교회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은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나 위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하고 거룩한 신비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가는 동안 하느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섭리로 받아들이는 개방된 마음과 그 뜻을 헤아리는 성실함을 지녀야 합니다. 

  

  4.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다양한 영적 전통들을 통해 풍요로운 의미에서의 식별이 가능한 교회입니다. 

  식별하는 교회가 된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성령의 활동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표징들을 알아보는 힘을 기르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무엇보다 다양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다양함을 획일성 안에 밀어 넣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치를 인정하는 만남과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시노드 과정을 겪으면서 ‘나’에서 ‘우리’로의 이동을 촉진하고 증진하는 관계의 인간학을 증진할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 교파와 타 종교, 그리고 교회가 속하여 있는 문화와 사회와의 만남과 대화도 강조합니다. 현재 제주도 인구 중 절반이 제주 토착민이고 나머지 50%가 외지인이라는 조사가 나옵니다. 점차 지역사회와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갈등과 충돌의 상황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제주 적응 및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노력이 함께 수반되어야 합니다. 

  

  5.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고 환대하며 사랑하고 용서하는 가운데 봉사하는 교회입니다. 

  성령은 경계 없이 역동적이며 모든 이를 이끌기 위하여 밖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긴장에 짓눌리지 않으며, 그 긴장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특히 사랑과 진리 사이의 관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라는 부르심을 정직하게 두려움 없이 마주합니다. 시노달리타스는 회심의 탁월한 길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일치 안에 회복시키기 때문입니다. 곧 교회가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자신의 기억과 화해하며, 다양한 다름을 환대하고, 경직된 분열로부터 구해내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처럼”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교회 헌장 1항)가 되라는 자신의 소명을 더욱 충만하게 구현할 수 있게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절대로 잊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주변에 천부적 인권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네트워크를 통해 온전한 인권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출산과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의적절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대응은 단순한 돌봄을 넘어 합리적이고 창의적이며, 구체적인 사목 프로그램들로써 체계적인 준비를 해 나가야 합니다. 

  

  주님 안에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친교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은 ‘육체를 따르는 생활’에서 ‘성령을 따르는 생활’로 회개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육체와 물질을 섬기는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참된 영이신 성령의 힘으로 이룩된 교회 본연의 모습을 살아가는 것이 교구와 본당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요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에페 4, 3).

  

  이제 제주교구는 2024년을 맞으며 시대의 징표를 찾아 떠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지난 10월 4일,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생태 회칙 <찬미 받으소서>의 후속 권고로서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를 발표했습니다. 이 서한은 8년 전 <찬미 받으소서>의 메시지를 좀 더 명확하게 보완하고 있습니다. 일련의 기후위기 악화와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또 다른 경고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서로 협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를 앞에 두고 있는데, 유럽과 중동에서 발발한 전쟁은 우리 미래 세대에게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현실의 문제가 어둡고 두려울수록 우리 교회가 할 일은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를 실천할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이 은총의 힘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뜻깊은 한 해를 맞이합시다. 매 순간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러한 마음으로 2024년도는 특별히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 소공동체」를 통해 본격적인 제주 복음화의 날개짓을 힘차게 펴가도록 합시다.


2023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문 창 우 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