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가치 훼손되면 미래 없어...'너' 인정할 줄 알아야"
“제주 미래를 위해 생명의 가치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문창우 주교(60)는 제주발전을 가로막는 갈등에 대한 해법의 키워드로 생명을 제시했다. 제주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미래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에도 생명이 관통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문 주교는 제주사회의 갈등구조 고착화 속에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동력 상실에 우려를 표했고 생명의 가치 수호를 통한 공동체 정신 회복을 강조했다.
2022년 마지막 날인 지난 31일 오후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문창우 주교가 집무실에서 본지와 신년 대담을 갖기에 앞서 교구 관할지역도 앞에 서 있다.
2022년 마지막 날 제주교구 집무실에서 만난 문 주교는 “올 한해 도민들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건넨 후 “제주에 점점 짙은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개발과 보전이란 두 개의 가치가 서로 충돌하면서 도민 삶의 질이 피폐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정 해군기지부터 제2공항, 비자림로, 월정하수처리장까지 주요 갈등 현안이 거론됐다.
그는 “해당 사업과 정책이 제주에 필요한 것인지 묻는 근본 고민부터 부족했다”며 “도정이나 국가가 결정해 밀어붙이는 일방통행, 성과주의에 밀려 도민 의견은 간과됐다”고 덧붙였다.
문 주교는 제주사회 갈등의 관리 또는 해소를 위한 프로세스를 3단계로 제시했다.
“우선 제주다움을 무너뜨리지 않는 마지노선, 즉 관광객이나 자연환경 제반의 수용 능력과 한계 등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필요합니다. 다음은 도민사회에서 충분한 대화와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 때 투명한 정보 공개와 최대 다수의 참여, 타당성 확보 등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마지막은 최종 결정을 위한 주민투표 등 절차의 이행과 수용입니다.”
현재 갈등 증폭 원인도 “사업별 절차가 하나같이 크게 미흡했다.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 형성을 시간이 부족했다”며 “정치논리‧개발논리는 절대 개입돼선 안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특히 문 주교는 스스로 개발과 보전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밝힌 후 문제는 갈등 구조가 장기화‧고착화하면서 생명의 가치가 훼손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제주가 지닌 생명력이 파괴되고 약화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생명체, 환경의 훼손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생명을 경시하는 인식과 문화까지 확산하는 것이죠. 개발도 생명 존중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생명의 가치가 등한시되면 인권도, 삶도, 미래도 모두 사라집니다.”
이와 관련 해군기지 갈등에서 평화를 지키려면 군사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그는 “과거 유럽 동서냉전 체제에서도 무기로 지키는 평화는 위장일 뿐이란 게 확인됐다. 군비 증강 경쟁을 통해서는 인류는 공멸로 치달을 뿐 지속가능 발전은 불가능하다”며 “인류를 위한 공동선을 지켜야 한다. 생명에 대한 가치, 평화를 위한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 대목에서 4‧3사건이 소환됐다. 그는 “4‧3 당시 좌우 이데올로기 속에 국가공권력이 사람을 하찮게 여겨 목숨까지 빼앗았다. 그 결과는 불신과 피해의식이다. 도민들은 트라우마로 인해 남을 못 믿고 경계하고 탐색하게 됐고 공동체 회복은 역사적인 과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문 주교는 “도민들은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과 조냥정신‧수눌음정신으로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서로 돕고 자연에 순응해 살았다. 가난해도 부자여도 차별이 없었다”며 “생명의 가치를 되살리고 제주공동체를 회복할 때 비로소 인권도, 환경도 살아 숨 쉴 것”이라고 피력했다.
지난달 31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집무실에서 본지와 대담을 갖고 있는 문창우 주교.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길은 뭘까. “신축민란(이재수의 난)이나 4‧3 당시 민중들이 왜 들고 일어났나요.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뭘까요. 바로 공동체입니다. 민중의 희생심이 오늘의 제주를 만들어낸 겁니다. 불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4‧3의 억울함을 풀어내는 해법도 결국 희생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도민 고유의 정신을 살려 생명의 가치를 꿋꿋이 지켜나가는 것이죠.”
올해 대선‧지선 결과를 놓고 그는 “국민도, 도민도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평가한 후 “국가경제가 발전하고 민주주의 수준도 향상됐지만 사회주도권은 민중에게 크게 이양되지 않았다. 여전히 기득권 중심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시민을 섬기고 봉사하고 존중하는 것인데 책임 있는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불신이 큰 이유”라고 일갈했다.
문 주교는 정치권을 겨냥해 “나에 대한 비판이나 견제를 용납하지 않는다.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이나 가치를 보지 않고 정부가 주도하면 따라오라는 구태”라며 “나와 네가 함께 하는 세상인데 너를 인정할 줄 모른다. 진보‧보수를 떠나 시대적 공감능력이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다시 그는 희생심과 생명의 가치를 꺼내들었다. “자고로 지도자를 자처한다면 시쳇말로 총대를 멜 줄 알아야 하는 만큼 희생심이 강해야 하고 무엇보다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방적인 가르침과 지시야말로 생명의 가치를 거스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를 둘러싼 너란 세상을 향한 공존과 돌봄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제1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4‧3추념식도 지도자 비판에 보태졌다. “4‧3 영령은 뭘 원할까, 어떻게 기릴까를 내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인데 달랑 1분 묵념한 후 수 십분 간 정치인과 기관‧단체장 인사말이 이어집니다. 그건 위로와 추념이 아닙니다. 진정한 추모를 위해 묵념을 확대하는 게 백번 낫지 않을까요.”
출처 : 뉴제주일보(http://www.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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