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소공동체”
3년 전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역사상 그 어떤 시기보다 신앙생활은 위축되고, 삶의 활기마저 잃어버린 채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의 경우, 신앙의 공백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교회로부터 급속히 멀어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 사목현장에서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사목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더구나 젊은 세대에게 신앙의 뿌리가 되어주어야 하는 가정 공동체 역시, 어려운 현실 속에서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제주 사회 안에서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신자 여러분 모두가 교회를 사랑하며 신앙에 항구하고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심에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
가톨릭교회는 3년 여정(2021~2023)으로 열리는 시노드의 1년을 지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제주교구 공동체는 나름대로 경청과 대화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교구공동체가 시노드 여정을 걸어오면서, ‘시노달리타스’라는 이름의 생소함과 시노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부족을 실감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교구 단계 시노드의 구체적인 일정을 잡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는지, 보다 더 친교적인 시간을 보냈는지 성찰하며 돌아보게 됩니다. 여러 부족함을 느끼는 가운데에도 교회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와 신자들 사이 소통의 창구로서 시노드가 가지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고 봅니다.
이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시노드 여정을 이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식별의 단계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시노드의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새로움’과 ‘친교 공동체의 재발견’을 기치로 하여 쇄신과 변화의 길목에 서 있기에, 과거의 방식으로는 이를 수용하고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식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신자들에게 아직 생소하고 그 의미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고충을 저 역시 함께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식별’의 의미를 제주교구의 현실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소공동체」의 모습으로 전달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바람직하리라 여깁니다.
주님의 뜻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때로는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마치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식의 체념이나 포기로 이해하여 슬픔이나 무기력에 빠집니다. 또는 주님의 뜻을 이행하는 것을 마치 냉혹하고 고통스러운 의무로 느끼며 부담감을 가지고 감당합니다. 상황에 따라 주님의 뜻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현실이거나 과거의 유물처럼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뜻을 마치 외부에서 부과된 하나의 규범처럼 해석하여, 여기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강요로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의 뜻의 본질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뺀다면, 주님의 뜻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 하느님께 드린 예수님의 ‘네!’라는 순명이 우리에게도 ‘네!’라는 사랑의 응답을 재촉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매일 청하는 은사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 10)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것으로 삼아 이 은사를 날마다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이것을 청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모범이 되어 주셨고 몸소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뜻은 신앙생활의 양식이요 영혼의 호흡이기에, 신앙인들에게는 매일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주님의 뜻을 찾고 응답하는 매일의 일상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여, 천국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2022년 추계 주교회의 총회를 마치고 나서 시노드 여정의 한국교회 종합의견서를 발표했습니다. 의견서는 한국교회 현실을 10가지 주제로 정리했는데, 주제를 넘나들며 가장 많이 언급된 문제는 성직자의 권위 의식입니다. 의견서는 성직자 중심의 수직적 소통 구조를 지적하고 수평적 의사 구조를 제시하며 소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때때로 순명이라는 교회의 아름다운 덕행이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오해되는 순간 친교에 걸림돌이 되기에 성직자들이 수도자와 평신도의 발언에 더 귀 기울일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울러 사제 중심적 또는 독단적 결정에 따른 교회 운영도 지적하며, 신자들에게도 발언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의견서에는 교회가 온전한 동반자가 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성찰도 담겼습니다. 무엇보다 청소년과 청년, 노인과 장애인, 북한 이탈주민과 이주노동자, 성 소수자 등이 교회에서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각 교구가 사회 복음화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의견서는 모든 교구가 65세 이상 신자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 교회에 진입한 만큼, 노인이 설 자리를 찾아주고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위기 가정과 이혼 증가로 신앙생활의 제한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위한 상담기구와 교회법 개선도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신자들이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는 점도 문제로 거론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주례 사제의 성의 없는 미사 거행과 준비되지 않은 강론이 신자들의 온전한 미사 참례를 방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의견서는 신앙과 전례보다는 친목을 앞세울 때가 많은 점, 성인의 경우 남성 위주로 전례 봉사자를 임명하는 관습, 또 장애가 있는 신자들이 전례 거행에서 배제되는 현실도 꼬집었습니다. 많은 신자가 교회 활동보다 사회생활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교회 활동에 동참하더라도 복음 선포로 이어지는 것이 쉽지않고 자기만족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실에서 이웃사랑의 실천과 사회와의 연대활동이 필요하다는 점도 의견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낙태와 자살, 안락사, 사형제도 반대, 환경보호, 평화증진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이슈들에 대해 적절한 응답을 제때에 하지 못한 부분도 성찰했습니다.
아울러 소통의 중요성도 거론되었습니다. 의견서는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정치 갈등,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교회 내에서도 단체 간, 본당 간, 교구 간 그리고 신자 사이에 벽이 존재한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 물리적 간극을 좁히고 교회 문화를 새롭게 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밝혔습니다. 의견서는 결론에서 다양한 이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지치지 않은 증언자가 되어야 하고, 생태계와 환경보존 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펼치기를 주문했습니다. 세계 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는 2023년 3월까지 대륙별 단계에 들어가며 공동 책임감으로 식별의 시간을 가진 후 2024년 10월에 한 번 더 준비하여, 두 차례에 걸쳐 시노드 본회의가 열린다고 합니다.
올해, 제주교구는 이러한 의견서의 내용들을 사목 평의회와 사제 평의회 등을 통해 각 본당과 일반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천이 뒤따를 수 있도록 진행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이 영적인 식별을 통해 교회가 추구하는 복음 선포의 사명을 활성화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능동적인 주체로서 부르심 받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공동책임을 맡아 함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여기에 더해 교종 프란치스코의 생태회칙 『찬미 받으소서』 반포 이후 제주교구의 상황에 맞게 실천하고 있는 7년 여정의 계획과 목표를 함께 점검하는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따라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구원 선포의 삶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이 땅에서 증거하는 일입니다. 시노드는 하느님 백성 모두가 같은 신앙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사명을 실천하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길입니다. 이러한 여정 속에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는 식별의 과정을 새롭게 경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성령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에 저는 우리가 매일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1. 늘 기도하는 공동체가 됩시다. 시노드 여정에서 함께 걸어가는 우리는 주님께서 섭리 안에 마련하신 은총을 청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여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기도의 힘으로 무장하는 것이 식별의 훈련을 위한 기초입니다.
2. 성경을 가까이에 두고 자주 읽읍시다.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찬례와 함께 새로운 전례에 맛들이는 가운데, 주님의 뜻을 늘 새롭게 깨닫고, 깨어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3. 개인이든 공동체든 모든 일에 앞서 상호 경청과 존중 가운데, 영적인 식별을 하도록 합시다. 이러한 식별을 통해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초대하시는 제주지역의 복음 선포의 사명을 충실히 살아갈 때, 하느님 백성인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주님 뜻을 실천하는 증언자가 될 것입니다.
2022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문 창 우 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