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대화를 살아가는 소공동체”
드디어 교종 프란치스코의 제안으로 시노드의 2년 여정(주제: 친교와 참여, 사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코로나를 비롯한 여러 어려움과 한계 속에 ‘세상을 순례하는 교회’로서 우리는 결코 만만치 않은 세상의 파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때론 흔들리고, 때론 고뇌하며 보낸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하느님 백성 모두가 좀 더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다시금 위로와 더불어 서로에게 격려의 손길을 보내고, 보다 근본적인 성찰 속에 본격적인 시노드의 공동 여정을 함께 시작하자고 제안합니다.
오늘의 시대는 결코 혼자서 걸어갈 수 없고, 모두가 함께 걸어가야만 합니다. 이는 우리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걸어가는 여정 속에 ‘식별’과 ‘책임’이라는 분명한 우리들의 응답을 요구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시노드」는 “공동합의성”이란 말로 보통 번역되지만 지난 추계 주교회의에서 충분히 그 뜻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결정하여, 그냥 라틴어 “시노달리타스”란 말로 쓰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교회의 신학적 성찰에도 불구하고, 지난날의 성직자 중심의 교회 현실은 하느님의 뜻에 온전하고도 분명하게 ‘네!’라고 응답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보다 더 시대에 걸맞은 가톨릭 교회의 혁신과 변화를 찾아야 하는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교종께서는 우리가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게 아니라, 「다른(변화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며, “하느님께서 제시하고자 하시는 새로움에 열린” 다른 교회를 만드는 것이 도전 과제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교종께서 이번 주교 시노드가 성령으로 충만한 여정이 되길 바라는 분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령, 곧 하느님의 새로운 숨결이 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온갖 구속에서 풀어 주시고, 죽은 것을 되살리시며, 사슬을 풀어 주시고, 기쁨을 널리 퍼뜨려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개인적 기호가 이끄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대화는 인간 삶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하느님 백성의 여정에 있어서도 소통을 위한 중요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대화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고 상대방의 필요를 이해합니다. 특히 이것은 깊은 존중의 표시입니다. 왜냐하면, 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듣는 태도를 갖추도록 하고, 대화 상대방의 보다 나은 면을 이해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교종께서는 “대화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공유하게 해주는 애덕의 표현”이라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화는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선물, 곧 은총임을 느끼게 합니다. 교회도 인간 내면에 자리한 다양한 요청들을 실현하고 공동선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시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오늘날 가정과 직장, 일상 등 모든 형태의 대화는 하느님 사랑의 위대한 요청을 표현하는 것이며 대화를 통해 분열과 몰이해, 무관심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십니다.
진정한 대화는 통교의 다리를 만들고 조그마한 자신 안에 갇혀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줍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취임 이후 쉼 없이 교회 공동체가 지닌 대화의 소명을 일깨워 왔으며, 특히 그리스도 형제들과의 소통 그리고 무슬림 등 타 종교와의 대화도 몸소 실천해왔습니다. (2016년 ‘자비의 특별 순교자 알현’ – 10월 22일 베드로 광장)
대화는 오랫동안 구원의 역사 안에서도 하느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늘 만남과 경청 그리고 식별의 과정을 거치면서 참다운 친교공동체의 모습으로 구체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두가 오롯한 참여와 사명을 가진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주교구는 지난해 복음화를 향한 한 걸음을 전진하며 형제애에 바탕을 둔 사랑을 약속했습니다. 올해 그 사랑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대화의 길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초대합니다. 이는 단순한 대화 기법과 같은 기술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 뜻에 기초한 신앙을 가진 형제자매들이 지녀야 할 기본에 보다 더 집중해야 하는 ‘진정성’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해 주시고 언제나 당신 뜻에 맞갖은 삶으로 초대하시며 걷는 비결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과의 대화 – 하느님 말씀의 신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된 생명의 법입니다. 사도로부터 이어 온 교회의 역사 안에서 말씀은 하느님의 뜻을 비추며 삶의 양식으로 다가옵니다. 따라서 신앙인은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 사랑의 메시지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자 애써야 합니다. 여기엔 날마다 말씀과 가까이하려는 영신수련이 필요합니다. 그럼으로써 살아있는 말씀이 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사랑을 꽃피울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성체와의 대화 –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신앙의 신비를 가장 크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매일의 전례를 통해 다가오는 주님의 몸을 영함으로써 온전히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각과 더불어 샘솟는 물을 길어 올리듯이 매일의 거룩한 성덕으로 초대됩니다. 그리하여 자주 주님과의 내밀한 대화의 시간을 통해 기도의 주인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온전히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 수 있게 해줍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새로운 감실로서 우리 자신이 참된 신앙의 가치를 실천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는 기후 위기를 비롯한 생태적 회심의 길을 보다 더 심도 있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형제들과의 대화 – 교회는 공동체 안에서 형제를 통해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 안에 드러나는 친교의 현실을 깊이 경험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그들 서로 형제애를 나누는 가운데 가장 깊이 예수님의 현존을 경험하게 해주는 장이 됩니다. 결국 형제애는 우리들의 걸어가는 여정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길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코로나로 인해 신앙을 멀리하게 된 형제들의 상황에 더욱더 가까이하여 진리의 빛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현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양한 문제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올바른 출구를 찾아야 할 식별의 시간이 중요한 때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안에서 우리가 모두 한 몸의 지체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뿌리로부터 우리는 저마다 공동선을 위한 은총이라는 양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 곧 당신 생명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어 모든 이를 당신 자신에게 이끌어 주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베풀어 주신 그 폭넓고 깊은 사랑에 따라, 호혜와 용서와 완전한 자기 증여를 특징으로 하는 형제애의 바탕이 마련된 것입니다.
내년 상반기에는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습니다. 정말 올바른 국가의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라며 한 표를 행사할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 차원에서도 지역 일꾼이 되겠다는 분들 역시 우리가 올바로 선출해야 하는 중대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의 시대가 안고 있는 부르짖음을 올바로 깨달을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나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까지 포함하여 다른 이들의 고통과 희망에 언제나 귀 기울이며 공감하고, 우리 형제·자매의 선익을 위하여 기꺼이 온 힘을 다해 헌신할 줄 아는 그 사랑의 힘든 길을 걸어가면서 참된 대화의 성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1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문 창 우 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