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차 아시아주교회의 (FABC)
제주
교구장 문창우 비오 주교 영성 체험 연설문 (의역본) 존경하는 추기경님, 주교님, 형제
사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포콜라레 운동과 함께한 제 개인적인 여정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포콜라레의 함께 하는 여정의 영성이 FABC 50차 총회의 전체 주제인 "공동 여정"과 부합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제주교구의
문(달) 비오 주교입니다. 미국인들은 장기간의 여정을 통해 달에 착륙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긴 여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정에 관해 말을 나눌 문(달) 주교가 여러분 앞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를 비로서 먼저 아름다운 나라 태국의 방콕 대교구까지 한국에서 부터 함께 여정을 해주신 대한민국의 형제
주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제주도 제주교구의 주교입니다. 제주교구에는 60여명의 신부님들과 100 여명의 남녀 수도자분들이 계시며 85,000명의 가톨릭 신자분들과 함께 41개의
성당과 공소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미흡하지만 교구장으로서 또 목자로서 존경하는 제주 양떼를
섬길 수 있는 직분을 완수해 나가려고 노력분투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600만 가톨릭 신자수에 비하면 제주 신자들의 규모는 작다고 생각될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주도 신자분들의 신앙의 척도를 할수있다면 그 어느 곳보다도 작다고 할수 없다고 자부
합니다. 주교로서 이 분들 신앙앞에 설 때면 제가 작아져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평신도, 수도자, 사제 여러분들께서 어려움을 견디면서 줄기찬 헌신과 사랑과 기도로 이룩한
결과 입니다. 이번 FABC 총회에서 제시한 복음 구절
"그들(동방박사들)은
'다른 길로' 갔다"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싶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였습니까? “집”,
곧 그들의 고향이었지만 그들은 "다른 길로" 갔다고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여행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여행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주님이 계신 같은 “집”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포콜라레는 나의 영성의 길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과 다른 영성의 여정일지는
몰라도 목적지는 주님이 계신 같은 “집”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한 “길” 뿐인 주님의 “길”과 다르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구원의 “길”은 오직 “길”이신 주님뿐입니다. 영어 표현에 “It struck me Home” 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마음에 와 닿았다는 뜻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포콜라레의 여정이 영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포콜라레를 통한 영성여정이 주님의
“집” 즉 Home 으로 인도 하고 있음을 체험하였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저의 영성여정의 체함담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말씀안에 계신 그리스도 현존의 체험입니다. 젊은시절, 저는 포콜라레 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진심어린 체험을 나누는 방식의 모임이었습니다. 여기서 처음 느낀점은
서로를 존중하는 나눔의 개방성, 순수성, 단순성에 놀랐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눔중에 한 청년이 자신의 형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여느 형제들처럼
서로 어울려서 지내면서 종종 여러 놀이를 함께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이를 할때 마다 결국은 짜증이
난다고했습니다. 형의 유치한 행동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그러한 형에게 대한 분노를 제어할 수 없게 되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청년의 여기까지의 나눔은 어쩌면 함께 사는 형제들에게 통상 일어나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후 이 청년은 저의 정신을 깨운 말을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통상적이지
않은 마음의 변화를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형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맞아들이는 이는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라고 말씀하셨기에, 유치한 행동을 하는 형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 같은" 형제로 받아들이기로 작정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형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모시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복음 메시지를 그의 일상적인 삶의 장르와 연결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물론, 형제들 사이에 성가신 일은 흔하고 일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이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형제를 받아들인 것은 전혀 평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빵이 실체화되는 것처럼 일상적인 경험은 어떤 면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실체화"되었습니다. “성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이 청년의 증언을 통해 포콜라레 모임 가운데
그리스도의 현존이 실재하심을 진정으로 느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 사람을 새로운
다른 사람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변하게 만들겠습니까? 우리는 성체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새로운 인식 즉 믿음으로 알게 됩니다. 저는 역으로 한 사람의 변화를 통해 포콜라레 말씀 나눔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을 새로히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둘째, 인간적인 사랑의 체험입니다. 사제품을 받은 뒤에도 계속해서 월례 포톨라레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월례
모임 어느 날, 한 형제 사제는 너무 초조해 보였습니다. 그를 괴롭히는
무언가를 모두가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얼굴 전체에 쓰여 있었습니다. 그냥
너무 안 좋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고 또한 모임에서 나누면
좋겠다고 격려했습니다. 나는 공동체 모임 가운데 진정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들으시고 그에게 작은 평화를
주실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맙게도 신부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신부는 재정적으로 곤란한 누나를
돕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보니 문제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재정적으로
그녀에 대한 도움을 계속할지 여부에 대한 적절한 식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돕는 것이 자선 행위라고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참석한 모든 사제들은 침착하게 귀를 기울이고 영적 식견들을 나누면서 한 사제로서 사랑의 방식에 대해 조심스럽게 조언들을 했습니다. 나는 형제 사제들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통해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곧 고민하던 사제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고, 얼굴이 환해지기 까지 하였습니다. 이 순간 고민하던 사제는
해방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하느님의 사제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재정적으로 그녀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확신한 것은 형제 사제들의 목소리에 담긴 사랑과 관심의 진정한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인 우리가 매우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분의 대변자이자 사랑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포콜라레와 같은 모임에서는 우리의 인격과 사랑을
매우 인간적인 방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에게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매우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기 위해 서로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인간적 사랑 표현의 장르중 하나는 포콜라레 모임이라고도 할수 있겠습니다. 셋째, 인격적으로 만나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체험입니다. 포콜라레 운동과 함께하는 여정은 내가 주교가 된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교구내 형제 사제들을 위해 한달에 두번씩 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제 사제로서 사제적 투쟁과 십자가의 고통과
정신을 나누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서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여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국 교구에서 온 한 신부가 저의 교구에 Fidei Donum 사제로
파견되어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우리는 전 세계의 다른 교구들과
사제직의 은사를 나누는 Fidei Donum을 선견지명으로 도입하신 비오 12세
교황 성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이제 전 세계는 세계의
자원을 공유하면서 점점 더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이시며 보편성을 간직한 교회는 더욱더 이러한 현대적
상황안에서 한 가족으로서 서로 서로 사제적 은사를 나누는 계기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는 그 사제를 포콜라레 사제 모임에 환영하고 초대했습니다. 그 사제는
제 초대에 즉시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모든 교구 사제들은 그를 우리가 공유하는 동일한 사제직의
한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했습니다. 사제적 형제애를 통해 서로를 알아갈 필요없이 즉각적으로 느끼면서 나눔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Fidei Donum 사제는 형제애 안에서 장애가 될수 있는 문화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한 몸의 교회를 재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그가 외국인 사제일지라도 우리의
사제적이며 또한 인격적 만남을 통해 전해지는 형제애는 그리스도의 한 몸 체험을 실현하게 합니다. 이렇게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고서는 한몸인 그리스도 신비체를 추상적으로만 느낄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형제애를
통한 참된 제자됨의 체험입니다. 나는 주교들 사이에서도 포콜라레 영성의 여정을 계속했습니다. 한국의 주교님들은 2002년부터 1년에 네차례의 주교 영성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벌써 주교님들은 20년 동안 공동체 모임을 계속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 모임에서 사목적 관심사, 요청 사항, 지혜과
지혜를 서로 나누고 영적 형제애를 형성합니다. 원로 주교들도 이 모임에 초대됩니다. 우리는 사목 문제를 나누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나누기 위해 모입니다. 진심으로 경청하고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더욱더 형제애를 알콩달콩 나누어 갑니다. 이러한
모임 안에서 저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는 말씀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자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권고하신 시노드적 방식을 통한 함께 하는 여정의 한 길목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서로의
말을 경청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각자의 문화를 존중합니다. 복음의
빛 안에서 서로를 만나고 성찬례를 함께 거행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더 하나가
되는 여정 중에 있습니다. 함께 나누며 걷는 여정의 목적지는 주님께서 마련하신
“집” , 주님의 Home 입니다. 그리고 미소한 교구 출신의 이 주교는 형제
주교님들과 함께 "문워크(Moon Walk)"를 하고
싶습니다. 경청하여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