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낭학교 소식
고제량 아그네스 (서문본당, (사)제주생태관광협회 대표) 제주교구 생태환경위원의 3번째 강의가 있었다. 고대표의 주제는 “제주 자연의 가치와 주민참여보전의 생태관광”이었다.
오늘에 앞서 제주교구 생태환경학교인 “틀낭학교” 참여자들은 인식의 전환을 여는 시간으로 문창우 주교님의 “생태를 사는 영성”, 이치범 미카엘 전 환경부 장관의 “환경 문제의 인식과 성찰”을 들었다.
오늘부터 6번에 걸쳐 이어지는 본강의에서는 강우일 주교님의 말씀대로 “보물섬 제주”로의 여행을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참여자들은 “생태환경의 가치, 문제와 원인 분석, 보전 제안”을 알아 보게 된다.
그 첫 시간으로 고제량 대표는 “제주 자연의 가치와 주민참여보전의 생태관광”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고대표는 “생태적 순환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생태적 순환 공간이라 하면 “오름, 뱅뒤, 곶자왈”을 말한다. 이 순환 공간 안에서 생태환경 운동을 하고 있는 고대표는 교구장 강우일 주교님의 사목지침 “생태적 증거의 삶”을 묵상한 결과를 나누었다. “우리 모두가 타생명과 나의 연결성을 깨닫고 생명을 존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증거의 삶”이라는 것이다.
이어진 강의에서 고대표는 참여자들과 함께 “호흡하기 묵상 시간”을 가졌다. 이 묵상법의 목적은“지금 내가 호흡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존재하는 모든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들이 공동 창작한 공기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대표는 “우리가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는 공기를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다해도 정작 많은 것들이 우리 곁에서 사라질 때 비로소 그 공기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다는 각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앞장서서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만들어낸 공동 창작품인 공기의 소중함을 느끼고,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다 같이 만들어 낸 공동의 선물인 공기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위대한 과업 (The Great Work)은 멸종위기의 생명들을 지키고, 기후 변화에 대해 우리가 절제하는 삶을 통해 나와 모두가 같이 사는 방법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표는 특히 환경보전, 지역경제, 주민복지를 지키는 생태관광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은 우리 곁에 있는 자연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우리 모두가 자연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한 참여에 동참해야 한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서 지금 놀라운 결실을 맺고 있는 “생태관광”에 대해 설명하였다. 지역 기관, 주민 참여를 통한 공동체 활성화의 모범 사례인 “선흘 1리 주민들의 공유 공간인 동백동산” 이야기는 틀낭학교 참여자들로 하여금 많은 각성을 하게 해 주었다. 선흘 1리 사람들은 1년에 6회 환경교육을 받으면서, 동백 동산 보전과 주민 행복을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 선흘곳을 창립하였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생태관광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 하였고, 작년 한 해 전체 관광객의 7%가 숲 탐방 등의 생태관광을 체험하고 돌아 갔다. 전체 관광객에 비해 아직은 턱없이 낮은 수치이지만 앞으로는 이 길 “생태관광”만이 자연을 지키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생활습관이 될 것임을 고대표는 강조하였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생태관광은 자본 창출 만을 위한 기존 관광 형태가 결코 아니다. 생태 관광은 이웃 주민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농업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우리 주변, 자연, 문화가 풍족해 지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생태환경 운동”이다.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하여 자연을 살리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생태 관광의 지향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우리들은 어느 한 사람의 생각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식의 전환을 통해 하느님 나라 건설에 함께 참여하면서 우리 주변을 하느님 나라로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날은 눈이 많이 왔고, 길이 얼었는데도 불구하고 틀낭학교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특히 본당 별로 차를 함께 타서 온 모습, 추운 날씨에도 교통정리 봉사를 하는 이들의 수고가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