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고 형제적인 사회를 향하여(작은 형제회)
2015. 8. 2.
세상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한다. 집도 자꾸 큰 집으로 키워나가려고 하고, 자동차도 자꾸 큰 차를 타고 싶어 한다. 키가 작은 사람은 키를 커보이게 하려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다. 젊은이들이 회사를 택해도 큰 회사에 들어가려고 몇 년씩 백수 생활을 해도 작은 회사 안 들어가고 기다린다. 요즘은 교회도 자꾸 커지고 신자들도 작은 교회보다 큰 교회 선호한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큰 것을 좋아할까?
그것은 옛날부터 덩치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힘으로 짓밟고 억눌렀기 때문이다. 짓밟히지 않고 억눌림을 당하지 않으려면 남에게 크게 보여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큰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기를 원한다. 남에게 억눌림을 당하기보다는 남을 억누를 수 있는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서에 보면 하느님은 끊임없이 큰 사람보다 작은 사람을 선택하신다. 작은 사람이 큰 사람보다 잘 나서, 더 훌륭해서가 아니라, 작기 때문에 선택하신다. 작아서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차별당하고 억압당하는 처지가 안타깝고 애처롭고 불쌍해서 하느님은 작은 쪽을 선택하신다. 카인보다 아벨을 선택하셨고, 에사우보다 야곱을 선택하셨다. 야곱의 여러 아들들 중 힘세고 듬직한 형들이 있었지만 그들보다 어린 요셉을 택하셨다. 이사이의 건장한 아들이 셋이나 있었지만 어린 막내인 다윗을 택하셨다.
이렇게 작은이를 선택하시는 하느님의 특별한 취향은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실 때 절정에 달했다. 유다 나라의 모든 잘 나가는 가문과 집안을 다 제쳐놓으시고 무명의 집안이고 보잘것없는 시골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평생을 보잘것없는 이들, 힘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과 어울리며 이 작은이들 가까이에서 사셨다.
당신 제자를 뽑으면서도 당시 사회에서 제일 밑바닥 인생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노동자들, 어부들을 당신 말씀의 선포자로 부르셨다. 모두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멸시받던 불치병자들, 장애인들, 거리의 여성들, 이런 이들을 항상 제일 가까이 하시고 연민과 애정으로 감싸주셨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세상 마지막 심판 때가 되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이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당신에게 해준 것으로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성 프란치스코도 예수님의 이 선택을 그대로 따르고자 자신의 잘 나가던 인생을 내던지고 가시밭길을 걸으신 분이다. 그도 본래는 더 커지려고 애썼던 사람이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신분도 더 높여서 귀족이 되고 기사가 되고 싶었다. 기사가 되기 위하여 공을 세우려고 전투에도 여러 번 참가하였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전투에서 지고 포로가 되어 사슬에 묶인 감옥생활을 하고 병석에 누우면서 자기보다 훨씬 더 작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작은 사람들의 작은 형제 중 한 사람이 되기를 초대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다.
프란치스코는 이런 작은이들 옆자리에,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걷는 순례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소유와 기득권을 포기하고,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갈 것을 선택하였다. 프란치스코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만인들을 사랑하려고 했다. 친구든 원수든 강도든 도둑이든 누구나 형제로 맞아들이려고 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이교인들도 사랑하려고 했다. 하느님이 빚으신 모든 피조물까지 사랑하며 늑대와 참새 떼를 향하여 설교하고 하느님 창조의 원초적인 평화를 회복할 수 있기를 꿈꿨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도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초의 평화를 향한 순례 여정에 자신의 발을 들여놓고자 부르심을 받은 분들이다.
재속프란치스코회 회헌 23조에 보니 이런 말씀이 있더라. [평화는 정의의 산물이며 화해와 형제적 사랑의 결실이다. 회원은 가정과 사회 안에서 평화의 전달자가 되도록 불림을 받았다.]
평화는 공짜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우리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피땀 흘려 헌신할 때에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불의의 열매인 가난과 소외와 싸우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표양을 따르고자 나선 여러분은 세상 모든 이를 형제로 끌어안기 위해 세상 누구보다도 낮은 자리에 서야한다. 그리고 작음, 작아짐의 정신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제일 가까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의 후예로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으면서 우리 주변의 누가 불의에 짓눌리고 힘들어하는지, 누가 제일 가난에 시달리는지, 누가 제일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외로워하고 눈물 흘리는지 끊임없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의 현실을 살펴야 한다.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서, 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의가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정신 차리고 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고통당하는 작은이들과 연대하며 불의의 원천에 맞서 싸워야 한다.
여러분은 왜 세월호의 유가족들이 1년 반이 지나도록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면서도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광화문 아스팔트 바닥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왜 당국은 세월호 조사 위원회까지 구성해놓고 아무런 진상조사도 하지 않은 채 세월만 보내고 있는지,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누가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지, 누가 이를 계속 방해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고통 받는 이들의 고통을 세월과 함께 무관심의 물결 속에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 망각의 무덤 속에 파묻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지난 7월17일 제헌절을 지냈다. 옛날에는 국경일로 헌법의 중요성을 온 국민이 인식하도록 하였는데 언제부턴가 국경일에서 빠지면서 언제 제헌절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지나버린다. 이번 제헌절 바로 전날 진실과 정의의 보루가 되어야 할 대법원이 참으로 실망스러운 판결을 내렸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 직원들이 공무 시간에 인터넷에 들어가서 야당 후보를 깎아내리고 비난하고, 여당 후보를 지지하며 옹호하는 메시지를 엄청나게 내보내며 선거개입행위를 저지른 것이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확인되었고, 그래서 고등법원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하여 전 국정원장이 법정 구속되어 있는데, 대법원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유무죄의 판결을 유보하고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검찰이 제출한 전자메일만으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법원은 이번만이 아니라 최근 여러 차례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판례를 남겼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소송이 2009년부터 시작되었는데 5년을 두고 기나 긴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해고노동자들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고 억울해서 무려 24명이나 줄줄이 목숨을 끊었었다. 그러다가 2014년 2월7일 고등법원이 해고자들 편을 들어 해고가 부당했다고 판결을 내렸다. 그나마 이 판결로 24명의 희생자를 내며 버티어 온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마음의 큰 짐을 덜고, 먼저 간 24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유가족들을 위로하였는데, 그런데 같은 2014년 11월14일 대법원은 회사 편을 들어 다시 해고가 무효라고 할 수 없다며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쌍용차 해고자들과 유가족들은 다시금 한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우리의 세상이 돌아가는 현실이다.
여러분은 여기까지 오실 때 KTX타고 오신 분도 계실 테지만, KTX 여승무원들의 해고 사태도 기억할 것이다. 이 여승무원들은 처음 입사할 때 모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청운의 꿈을 안고 입사했다. 조금의 수습기간을 거치면 코레일의 정규직 사원이 될 것이라고 굳게 약속했고 그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입사했다. 그런데 2006년 코레일은 여승무원 280명을 정리해고 했다. 이 여승무원들은 단식 농성, 서울역 고공 농성을 계속하며 코레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과 2011년 각각 1심과 2심에서 재판부는 여승무원 손을 들어주며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하였다.
그런데 2015년 2월 대법원은 또 다시 이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하며 여승무원들의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뒤집었다. 다시 말해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해고해도 무방했다는 것이다. 1심과 2심에서 승소한 여승무원들은 코레일로부터 임금과 소송비용을 받았었다. 1인당 8640만원을 받았다. 10년을 길바닥에서 보내며 온갖 고생을 계속해 온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금년 들어와서 대법원에서 이 판결을 뒤집었고, 여승무원들은 받았던 8640만원을 토해내야 한다. 소송비와 생활비로 이미 써버린 돈을 토해낼 형편이 못 되는 한 여승무원이 지난 3월16일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나이가 불과 35살이었다.
엊그제 보도를 들으니 해군은 강정 해군기지를 이미 86% 진행했는데, 그동안 반대시위 등으로 기지 공사가 14개월 정도 지연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공사 지연으로 말미암아 360억 정도의 손해가 발생했는데, 그 손해에 대해서는 공사 지연의 원인을 제공한 단체와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마을 주민들의 수많은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속임수와 편법을 동원하여 일방적으로 공사를 강행하여 아름답던 강정 바다와 구럼비 해안을 파괴하고 마을 공동체를 절단내놓았다. 이제 공사가 좀 지연되었다고 해서 반대한 주민과 단체에 273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벌금까지 부과하겠다고 나서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 상상만 해도 참으로 숨이 막히고 속이 뒤집힌다. 그래도 아직 이 나라에는 적지 않은 양식 있고 용기 있는 사법부 재판관들이 있다고 믿는다. 이들이 이런 불의와 불공정을 바로잡아 줄 것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오늘의 현실만 드려다 보면 좌절하게 되고 희망을 잃고 싶어진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야 만다. 옛날 70년대에 긴급조치 위반이니, 국가보안법 위반이니, 간첩이니 하면서 중죄인으로 재판받고 몇 년씩 형을 살았던 사람들이 40년이 지난 요즘에 다시 재심청구를 법원에 제기하였고, 그런 이들이 재심이 받아들여져서 계속 승소하고 보상까지 받고 있다. 진실은 이렇게 드러나고야 만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과 삶을 계승하고자 이 자리에 모인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오늘의 프란치스코가 되어 오늘의 세상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잊혀지고 억눌림을 당하는 가장 작은이들 곁에 여러분이 다가서기를 기원한다. 그 작은이들과 연대하며 격려와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기를 기대한다. 어디에 오늘의 작은이들이 밀려나 있는지 발견하고 찾아내도록 항상 깨어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