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 제주 교구 사목교서
‘작은 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소공동체’
지난 8월 중순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를 찾아주신 프란치스코 교종을 모시고 복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분은 4박5일 동안의 빡빡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기쁘게 다가가 주셨습니다. 슬퍼하는 이들과 슬픔을 나누시고, 아파하는 이들을 끌어안고 위로해 주시며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교종께서는 특별히 한국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기를 촉구하셨습니다. 한국 교회가 그러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번영과 웰빙에 안주하지 말고 사회의 변두리에 사는 이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예언자적 증거가 끊임없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일어나 비추어라’ 24쪽) 그들과 연대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한국 교회는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일하기 때문에 교회 자신이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받아들이려는 유혹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일어나 비추어라’ 27쪽)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를 꾸짖었듯이 교종 프란치스코도 한국 교회에 경종을 울려주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지는 않지만, 가난한 이들이 감히 교회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또 제집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도 없게 하는’(‘일어나 비추어라’ 26쪽) 번영의 유혹을 주의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예수님은 복음 선포를 하실 때 이스라엘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하지 않으시고, 대부분의 시간을 변두리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그곳에서도 사회에서 가장 대접 받지 못하고, 멸시 받고, 따돌림 당하는 작은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도 즉위 후 줄곧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 말씀과 행동으로 다양한 표양을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된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이어받으며 당신 스스로도 작아지고 낮아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난민, 이주민, 일용직 노동자, 재소자, 병자, 실직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우리 교구도 부족하지만 그동안 지역사회와 함께 하기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려고 조금은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우리의 나눔이 단순히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 사업에 국한되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연대로 성숙되기를 촉구하십니다. 자선은 재화를 나누는데 그치지만, 연대는 재화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관심, 배려, 정을 나누고 사랑을 실천하고 형제적 친교를 이루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일어나 비추어라’ 18쪽)
제주도는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우리나라의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가운데에서도 더 변두리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고통과 외로움에 사무친 병자들, 소년 소녀 가장들,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이들, 이주민들, 새터민들, 주일을 지킬 형편이 못 되는 신자들 등 예수님의 가장 작은 형제들이 우리의 관심과 방문, 나눔과 통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제주 교구나 우리나라의 국경 안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땅 끝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파견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도 모든 인류가족의 전인적인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연대의 세계화’(‘일어나 비추어라’ 18쪽)를 호소합니다. 복음은 말로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구현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명을 받은 우리는 땅 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복음적 증거를 실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관심과 사랑에 동참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분의 교서 ‘복음의 기쁨’과 가톨릭교회의 ‘간추린 사회교리’를 읽고 공부하며 우리의 믿음을 영적인 차원으로 제한하지 말고, 사회적 관심을 심화하며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임하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014년 대림 첫째 주일
제주 교구 감목 강 우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