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의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양심

by 사무처 posted Aug 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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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이모저모

이 글은 제주교구장이며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가 경향잡지 등 교회 내 언론 매체에 보낸 글입니다.

        제주의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양심


1.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강정 주민을 비롯하여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앞장서서 자랑하고 홍보하는 제주의 자연유산을 온전히 지키기 위하여, 이를 치명적으로 훼손하는 청정 해역의 군사기지화를 반대한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제주가 유네스코에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 자연유산, 세계 지질공원으로 등록되어 트리플 크라운이라며 자랑하고, 세계 자연보전 총회를 내년 이곳에 유치하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 보존된 강정 앞바다, 천연기념물인 ‘연산호’가 가득 펼쳐져 있고, ‘붉은발말똥게’가 아직 서식처를 두고 있는 해저를 준설하고 콘크리트로 제방을 쌓아 수십 척의 군함이 정박하는 군항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으니, 너무도 이율배반적이고 앞뒤가 안 맞는 이 결정에 대해 많은 이들이 사생결단으로 4년 넘게 계속 반대해 오고 있다.

2. 이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강정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하는 과정과 절차가 너무 비민주적이고 탈법적인 방법으로 주민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었기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3.8선에서 제일 먼 남녘 해안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하는 이유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경우 최근 갈수록 심화되는 아시아에서의 미·중·일의 안보 경쟁 현실에서 볼 때, 제주는 평화로운 관광지에서 동북아의 새로운 군사적 긴장의 전초기지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베트남 앞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장, 센카쿠 열도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일본의 갈등, 오키나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신경전 등의 정황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면 당연히 귀결되는 결론이다. 뿐 아니라 최근 미국 내에서도 제주의 해군기지가 미국을 위한 기지라는 다양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3. 이 모든 반대 이유에 공감하면서도 나는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더 근원적인 사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제주에 와 살면서 깨닫게 된 제주의 역사와 제주도민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진 상처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제주도에 새로운 군사기지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이 정부가 수립되는 1948년을 즈음하여 제주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기해야 한다.
나는 제주에 부임하기 전에 제주도에 ‘4.3 사태’ 라는 사건이 있었다고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4.3이 왜 일어났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역대 한국 정부는 4.3을 좌익 폭도들의 봉기라고 규정하고, 50여 년 동안 이에 대한 상세한 조사나 언급을 용납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한국 국민은 이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살다보니 제주도민 대부분은 4.3에 대하여 가슴속 밑바닥에 씻어지지 않는 깊은 상처와 한을 안고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접하는 보통 사람들, 이념이나 사상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일반 시민들, 굳이 따진다면 일상생활에서 오히려 보수적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4.3에 대해서만은 공통된 아픔을 간직하고 대한민국 정부와 국가에 대하여 한이 맺혀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공권력이 민중봉기 진압작전에 투입되어, 무장 투쟁을 벌인 이들만이 아니라 민간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연행, 정당한 재판 절차 없이 집단 학살하거나 처형하였기 때문이다.

4. 1948년 2월의 유엔 총회는 한반도 내 가능한 지역에서만이라도 선거에 의한 독립정부를 수립할 것을 가결하였다. 그리하여 1948년 5월 10일에 남한에서 총선거가 실시되게 되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에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하여 선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6명이 사망함으로써 제주도 전역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결과적으로 제주도에서만은 총선거가 실시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1948년 4월 3일 제주 여러 지역에서 남로당 세력이 무장 투쟁을 주도하기 시작하였고, 사태가 경찰만으로는 수습되지 않자 미군정은 국방경비대를 파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3개월 후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해안선에서 5킬로미터 위쪽의 중산간지역 마을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실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중산간마을의 95% 가옥들이 불에 타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이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 2만여 명은 무장세력에 강요당하거나, 살기 위하여 산속으로 피신하니 이들은 본의 아니게 무장대로 간주되고 토벌의 대상이 되었다. 1949년 3월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설치되면서 귀순하면 사면한다는 정책에 따라 많은 주민이 하산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국의 말을 믿고 하산한 많은 이들이 사면되지 않고 처형되거나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1949년 6월 무장대 총책인 이덕구가 사살됨으로써 무장 세력은 사실상 궤멸되어 4.3의 혼란은 정리되는 듯했다.

5. 그러나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요시찰자와 입산자 가족 등이 예비검속으로 처형되었고 전국 각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4.3 관련자들도 모두 즉결처분되었다.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의 세월을 두고 제주도민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이 살기 위하여 제주를 떠났다. 한국 본토만이 아니라 일본까지 도망쳤다. 제주도민 인구가 예나 지금이나 전국의 1% 정도인데, 일본에 거주하는 한인 교민 가운데 10%가 제주 출신이다. 일본에 도항한 제주도민들 상당수가 4.3 이후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고향을 등진 것이다. 고향에 남은 4.3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연좌제’에 걸려 숨도 제대로 못 쉬거나 ‘빨갱이’ 딱지가 붙어 얼굴을 들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

당시 사건을 직접 체험한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들으면, 어느 날 갑자기 새벽같이 군경이 마을을 포위하고 모두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줄 세워 데리고 갔고 모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집단 학살당한 이들의 시신이 함께 무더기로 묻혀있는 곳이 제주도 전역에서 발굴된다. 제주 국제공항 활주로 부근에서 최근에도 4.3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어떤 마을은 그 마을 주민 132명이 한꺼번에 학살당하여 지금도 집집마다 같은 날 제사를 지낸다. 4.3 발발 당시 제주도민이 28만 명 정도였으니 10%가 넘는 이들이 희생된 셈이다. 4.3은 남로당 무장 세력이 경찰서를 습격하여 촉발되었지만, 그 대응 과정에서 국가의 공권력이 무장 세력 이외의 민간인들을 정당한 재판 없이 무차별 학살한 ‘제노사이드’에 준하는 범죄다. 전시라 하여도 민간인을 이렇게 집단으로 학살한 사건은 전쟁범죄에 해당되고 국제사회에서도 그 책임은 반드시 묻는다.

6. 유다인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국제사회에서 아직도 전범으로 쫓기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당시 나치의 만행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거나 유다인들을 보호하는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외면하였음을 반성하고, 참극의 현장인 강제수용소들을 복원하며 후손들에게 과거의 범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쳐왔다. 유럽의 가톨릭교회 역시 당시의 참극을 지켜보면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저지하는 데 앞장서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프랑스 주교회의에서는 지금도 동유럽 지역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유다인 학살 터를 발굴하여 사실을 확인하고 기념비를 세우는 등 속죄의 징표를 행동으로 보이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자국민이 3만 명이나 집단 학살되었음에도 50년 동안 침묵을 강요하며 진실을 밝히지 않았기에 99%의 국민이 이에 대하여 아는 바도 없고 수많은 동족의 희생에 대하여 아무런 아픔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국 가톨릭교회도 지금까지 4.3의 비참한 역사를 한 번도 온전히 성찰한 적이 없다. 다행히 2000년 8월 28일 정부의 공식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발족되고, 2003년 10월 31일 대통령은 진상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국가 권력에 의하여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하였음을 인정하고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50년 이상 현대사에서 삭제되고 지워졌던 사건이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 한 번으로 복원될 수는 없다.

7. 인류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죄의 역사를 펼쳐오면서도 과거의 죄악을 발판삼아 이에 대한 뉘우침과 속죄의 보폭을 넓힘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더 나은 세상, 더 인간다운 세상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문화를 이룩하며 세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에서 배운 것을 밑거름으로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인류는 오늘날 고대 세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발전한 문명 세계를 살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포기하면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 어둠이 있고 실패가 있어도 그 기억을 통하여 다시는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다짐과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려는 결단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으로 세상에 온 사명을 완수한다. 과거의 죄악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다시는 그 어둡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에, 인류는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노예제도를 극복하고, 신분의 차별, 빈부의 차별, 남녀의 차별, 직업의 차별 등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온갖 장애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오늘날 지구 어느 대륙에서나 인간의 존엄한 인권이 조건 없이 존중받고 세상의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존재로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과 상처 속에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에 대한 기억을 후손들이 되살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의 과오를 망각의 장막 안에 묻어버리고 그 과오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성과 윤리를 갖춘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8. 제주의 땅은 4.3의 희생을 거름으로 참된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 3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들의 억울한 희생을 망각의 무덤 속에 파묻고 거기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희생은 무의미한 죽음이 되고 만다. 수많은 무고한 피에 물든 이 섬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은 그 희생자들의 무덤을 짓밟는 행위요, 그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는 행위다. 이 수많은 희생자들이 흘린 피에서 이념과 폭력을 뛰어넘는 평화를 창출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절호의 도약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는 제주도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위하여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평화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평화의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제주를 군사기지로 만들지 말고 평화의 바위섬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길만이 하느님의 원대하신 구원의 역사에 협력하는 길이다.

9.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에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명의 무차별 살상을 일으키는 전쟁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이렇게 선언하였다.
“과학 무기의 발달로 전쟁의 공포와 잔혹성은 엄청나게 불어났다. 이런 무기를 사용하는 전투 행위는 정당방위의 한계를 훨씬 벗어나는 막대한 무차별 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 …도시 전체나 광범한 지역과 그 주민들에게 무차별 파괴를 자행하는 모든 전쟁 행위는 하느님을 거스르고 인간 자신을 거스르는 범죄이다. 이는 확고히 또 단호히 단죄 받아야 한다”’(사목헌장, 80항).

교회는 또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많은 사람들은 무기의 비축을 가상의 적에게 전쟁을 단념하도록 하는 역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것을 국가들 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가장 유효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그 같은 전쟁 억제 수단과 관련하여 막중한 도덕적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 언제나 새로운 무기를 마련하는 데에 소요되는 엄청난 재원의 낭비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막고, 민족들의 발전을 방해한다. 과잉 군비는 분쟁의 원인을 증가시키고, 분쟁이 확산될 위험을 증대시킨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315항).

10. 1968년 바오로 6세 교황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군비 경쟁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지금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기아에 울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빈곤을 당하며 얼마나 많은 문맹자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가? 또 사람들은 학교다운 학교, 병원다운 병원, 주택다운 주택들을 얼마나 바라고 있는가? 그런데 공적 사적인 낭비, 국가나 개인의 허영된 지출, 치열한 군비 경쟁이 웬 말이냐? 본인은 이 사실을 명백히 지적할 중한 책임을 느낀다. 너무 늦기 전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 53항).

강정은 기지 건설에만 1조 원 가까운 재원이 투자된다고 한다. 또 그곳에 배치될 수천 억 원 하는 이지스함을 비롯하여 첨단 전함들과 거기에 탑재될 고성능 무기들을 합산하면 수조 원에 달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기지와 무기들을 운영하기 위하여 해마다 투입될 연 예산 총액을 생각하면 위의 바오로 6세 교황의 애절한 호소를 소리 내어 외치고 싶어진다. 이 천문학적인 재정 지출은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가? 오늘날 세계적인 경제 침체와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노후대책도 없이 정리해고된 이들, 안정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수많은 저소득층 국민들의 고통과 좌절을 못 본 체하며 이런 무력 증강을 무리하게 추진해야 하는 것인가?

11. 현대의 역대 교황들은 한결같이 군비축소를 통한 평화를 호소해 왔다. “건전하지 못한 군비 경쟁은 각국의 경제 발전과 후진국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필요한 재원을 탕진해 버린다. 인간의 복지에 기여해야 할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발전은 전쟁의 도구로 변했다. 과학과 기술은 점점 더 완성된 파괴적 무기의 생산에 적용되며, …새로운 전쟁의 정당화를 요청한다. 그리고 전쟁은 예측되고 준비될 뿐 아니라, 현재 세계 여러 곳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키고 있다”(요한 바오로 2세, 「백주년」, 18항)

모든 그리스도인은 현대의 교회가 일관되게 가르치는 이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공할 무력이 빚어내는 파멸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나는 강정이 대한민국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동북아의 긴장을 해소하는 평화의 마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할 뿐이다.

풍성한 바다로 저희를 축복해 주신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아름다운 오름과 돌과 숲으로 제주를 빚어주신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모진 바람과 파도와 역사의 아픔을 겪고도 좌절하지 않고, 인고의 삶을 이어오도록 저희 조상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지켜주신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제주가 지난 세월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 참된 평화의 섬이 되게 하여주소서!
이제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저희가 물질적인 탐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주소서!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며 개발의 포로가 되어 주님께서 은혜로이 내려주신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인간들이 의지하는 군사력이 결코 이 땅의 평화를 지켜주는 보증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주소서!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인간들이 만든 무기와 힘에 의지하기보다 주님의 자비와 권능에 의지하게 하여주소서!

주님께서 손수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어주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어주소서! 그러면 저희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이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이다(이사, 2,4).
주님, 이 제주가 세상에 참된 평화를 실현하는 낙원이 되게 하여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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