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은 평화”(판관 6,24)라는 성경 말씀이 가르쳐 주듯이 하느님께서는 평화를
근본 속성으로 갖고 계시며, 이 소중한 가치를 세상에도 주셨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인간 사회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평화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지평으로까지 넓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다른 피조물과의 평화도 염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께서는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라는 주제를 선택하여 자연과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역설하는 데에 전문을 할애하였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올해
201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 역시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로 그 주제를 선정하셨습니다.
사회개발로 인한 생태계 위기 문제는 창조질서를 저해하는 윤리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교회는 이에 크나큰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가 다른 피조물과의 평화를 도모하려면 현대인의 문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물질적인 경제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여 자본 축적에만 매진하는 한, 환경위기는 점차 증폭될 것입니다. 각종 영상 매체가 극지방의 해빙 현상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온실가스 과다 배출에 따른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은 인간과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고자 작년 12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제15차 당사국 총회가 열렸지만, 선언적 의미의 합의를 보았을 뿐 구체적 실행 방안 마련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역규모에 따른 경제력은 세계 13위 수준인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에너지 절약과 자원 사용의
효율화, 생태 친화적 산업구조로의 개편 등 다양한 실천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개인도 자신의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하고자 적극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지구촌 전역은 유달리 환경재난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유형을 달리하면서 지속되거나 심지어 더욱 심화되리라는 점에서 몹시 우려스럽습니다. 자연과의 평화를
제대로 도모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병폐가 그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환경의 황폐화 문제가 사회와 환경, 나아가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지속될 수 없는 우리의 생활양식과 현재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201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1항)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4대강 사업도 자연과의 평화에 매우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질을 개선하고 물 부족에 대비하며 홍수를 예방하자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기획했던 바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16개 이상의 보를 설치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엄청난 모래를 파헤칠
경우, 수질은 악화되고 강과 습지에 서식하는 희귀한 식물과 다양한 어류, 조류 등 온갖 생물종은 수난을 겪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조성된
아름다운 경관도 퇴색될 것이 확실합니다. 개발로 인한 경제적 이익과 환경적 부담도 명암을 달리함으로써 정의롭지 못한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건설기업과 지주는 이익을 보겠지만, 천변이나 설치된 보 인근에서 경작을 통해 삶을 유지하는 농민들 일부는 피해를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탐욕과 이기심이 창조의 질서, 상호의존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창조질서”(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8항)를 해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현 정부가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를 통해 전면적인 방향 전환을 꾀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자연적으로 흐르는 강의 숨결을 끊지 않아야 합니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생물 다양성의 해’입니다. 인간이 피조물과 평화를 이루고자 할 때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이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가까이할 때 평화와 고요, 그리고 새로운 활력의 충전을 경험하게 된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상호의존성이 존재합니다. 피조물을 돌보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통하여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201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3항)
2010년 6월 5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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