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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이모저모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성명서


개악된「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일부 개정안이 오히려 개악되어 국회를 통과한 데에 대해 한국 천주교회는 심각한 우려와 함께 유감을 표명합니다. 이른바 황우석 박사의 연구 조작 사태 이후 한국 사회는 생명과학 분야와 관련해서 올바른 생명윤리 확립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하였고, 그러한 공감은 학교 교육에서부터 생명과학 연구 분야에 이르기까지 널리 확산되는 등, 생명윤리의 발전에 큰 전환기를 맞이하는 데에 기여하였습니다.

  그 결과 생명과학은 올바른 생명윤리 의식과 함께 발전할 때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확인할 수 있었고, 이에 정부와 사회 각계는 2005년부터 시행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전면적인 개정에 큰 관심을 가지면서 특히 정부는 지난 2년 가까이 개정 작업에 노력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그러한 노력을 외면한 채 진지한 논의나 토론도 없이 거의 일방적으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개악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미국산 쇠고기의 무분별한 수입으로 예견되는 광우병 논란에는 국민의 건강을 해친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토록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도, 그보다도 더 근원적으로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무시하고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률안은 아무런 토론도 없이 통과시켜 버린 국회는 스스로 논리적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이 개정되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또 다시 생명윤리를 무시하는 악법의 옷을 입히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개악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생명과학기술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가운데 생명윤리와 안전을 확보하면서 생명과학기술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면서 또 다시 인간의 생명을 철저히 파괴하는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를 경험하면서, 체세포복제배아 연구나 실험을 통해 단 한 개의 줄기세포도 만들지 못했던 사실조차 벌써 잊은 채, 국민의 존엄한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법률을 입법기관이 앞장서서 개악하는 이유를 단지 파장을 맞는 국회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자위해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파장하는 국회는 국민의 존엄한 생명을 침해하고 훼손하는 법률을 제정해도 괜찮은지 묻고 싶습니다. 이 법률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은 이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서 통과에 찬성하셨는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인간 배아는 당연히 생명을 지닌 인간 개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확신이자 믿음입니다. 국제적인 협약과 조약 역시 배아를 인간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미 인간 배아에서부터 인간 생명의 모든 프로그램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 배아가 자율적인 유기체로 발달하여 하나의 완전한 태아로서 태어날 온전한 인간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될 생명은 처음부터 인간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책무를 가진 정부와 입법기관이 이러한 인간 생명을 단순한 생물학적 재료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를 입법화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우려해야 할 사안입니다. 희귀병과 난치병 등의 치료를 위해 온전한 인간 생명인 배아를 만들고 또 희생시켜도 좋다는 발상은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약한 생명은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강자를 위해 희생되어도 좋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희귀병과 난치병 치료를 위한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와 실험은 매우 절실하지만 그 연구와 실험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이루어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개악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또한 난자를 기증하는 여성에게 매매나 다를 바 없는 실비 보상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험 또는 연구를 위해 난자의 확보를 용이하게 하자는 의도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제 국가가 나서서 난자 매매를 부추기는 형국에까지 이르고 만 것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은 철저히 무너져 버리고, 모성의 원천인 난자까지 매매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생명과 그 원천은 철저히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이 믿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생명체인 배아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조작하기 위해 여성의 건강권은 무시되고, 더욱이 가난한 여성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는 지경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개악되어 국회를 통과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올바른 방향에서 생명과학이 발전하도록 지지해주는 법률은 결코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오히려 경제와 실용을 앞세워 생명까지도 자본의 논리로 몰아가고, 생명의 권력화를 부추기고, 치료를 통해 생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무죄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으며, 인간 생명의 조건을 왜곡시키면서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장수 욕구를 부추기고, 인간 생명이 누려야 할 천부적인 권리를 무시하는 반생명적인 법률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고 훼손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악법인 이 법률의 전면적인 개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법률이 제정되었다고 인간 배아에 대한 실험이나 조작, 파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재차 확인합니다. 이 땅의 윤리의식 부재에 대한 우리의 책임도 통감합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제대로 존중하지 못하고 어려움 중에 있는 생명을 사랑하지 못한 우리의 무관심에 대한 잘못을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한 인간 생명(창세기 2,7)을 물질적으로 취급하고, 또 상업적인 이익추구나 경제적 논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하느님께서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5월 16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안  명  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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