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부활절 사목교서
|
|
|
|
|
|
|
긴 사순시기를 거쳐 주님 수난과 죽음의 고통에 동참하신 교형자매 여러분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환희와 영광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주 예수님은 권세 있는 이들의 폭력에 희생되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불의와 폭력에 결코 굴복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음모와 폭력에 철저한 무저항과 비폭력으로 맞서심으로써 폭력을 오히려 무력화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명령에 철저히 순명하신 예수님을 죽음의 권세 밑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심으로써 불의와 폭력에 결적적인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다음,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당신의 살아계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뽑으시고 가르침을 주며 교회의 주춧돌과 기둥으로 삼으셨던 사도들이 아니라 왜 그 여인들에게 먼저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셨을까요? 여인들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회에서 약자였습니다. 사회적 서열에서도 밑바닥이었고, 성전에서도 제일 뒷자리를 차지했으며, 아버지나 남편의 보호막이 없으면 세상에서 가장 무방비 상태에 놓인 연약한 신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여인들에게 먼저 보여주신 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힘 있는 자들의 권세와 폭력이 아니라 나자렛 목수의 온유와 비폭력이 결국은 승리하게 해주셨음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며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일찍이 당신 어머니가 ‘권세 있는 자를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도다!’ 라고 노래하신 기도를 완성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세상의 가장 힘없고 미천한 이들에게 당신 부활의 승리와 영광을 보여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하여 당신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오늘의 세상에 부활의 증인으로 파견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여전히 불의와 폭력에 짓눌리고 힘들어하는 보잘것없는 작은 이들에게 당신의 승리와 영광의 증인이 되고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벗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열흘 후에 4.3 기념일을 맞이합니다. 이 제주 땅 구석구석에 헤아릴 수 없이 처참한 죽음과 무고한 희생의 피를 뿌린 비극이 저질러진 지 꼭 60년이 흘렀습니다. 이 사건은 역사의 혼돈과 민족의 분단이 빚어낸 비극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보잘것없는 약자에 대한 국가 권력의 부당한 남용과 무자비한 폭력의 자행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3 60주년을 맞는 우리가 이제 다시는 어떠한 폭력도 용인하지 않는 평화의 사도로 일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공권력이라 하여도 정당치 못한 폭력을 동원하여 힘으로 강요된 평화를 이루려고 해서는 안됨을 증언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참 평화는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우리에게는 미록 멀리 떨어진 티베트 땅이지만, 60년 전에 제주도민이 겪었던 가공할 무차별적 폭력이 오늘도 흡사하게 자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계속 보고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 티베트 백성들이 지금 초강대국의 공권력이 자행하는 엄청난 폭력 아래 짓밟히며 얼마나 숨막히는 공포와 분노에 몸을 떨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외신이 전하는 티베트의 상황은 총칼을 앞세운 군경의 가택수색, 검거, 체포, 피살 등의 단어가 가득 차 있고 그나마 보도진은 접근이 일체 차단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군대와 경찰에 포위되어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겪는 좌절과 고독에 눈을 감고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오늘의 세상에서 가장 약한 이들, 외로운 이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어떤 형태로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를 바라십니다. 이런 오늘의 현실과 연결되지 않은 부활 신앙은 공허한 것입니다. 근래에 우리나라는 갈수록 많은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으로 외국인들이 급증함에 따라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과 조건하에 생활하는 것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인 남편의 폭력에 목숨을 잃은 이주민 여성,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다 죽은 이주민 여성, 남편의 버림을 받고 자살한 여성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나라의 재판관도 동포의 야만스러움을 한탄하며 고개를 들지 못하였습니다. 이주민 여성들만이 아닙니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습니다. 가정 폭력으로 피난처를 구하여 아이들까지 데리고 집을 도망치는 여성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머니도 아이들도 심신으로 깊은 상처를 받아 장기간의 치료와 돌봄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들이 나 자신이나 우리 집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도 고통 중에 있는 이런 연약한 이들 곁에 제일 먼저 찾아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경배 드리고자 한다면 세상에서, 우리 주변에서 가장 힘들어하고 나약한 이들, 고통 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먼저 관심을 갖고 그들 가까이에 함께 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일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라고 이르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고 당신이 평소에 가르치시고 치유하시고 돌보셨던 갈릴래아 주민들 곁으로 돌아기시고 거기서 제자들과 함께 일하실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과 평화가 여러분 가정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3월 23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 강우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