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벌서 한 해가 다 가고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짙은 어둠 속에 오셨습니다. 오랫동안 어둠 속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빛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빛으로 다가오고 계십니다. 지금은 한 해 중에 밤이 가장 긴 때입니다. 어둠이 빛을 능가하는 계절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오늘의 세상도 어둠이 빛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농어민이 수입농수산품 때문에 빚더미에 짓눌려 있습니다. 중소 상인들이 경기가 안 풀려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경제를 살리는 것이 최우선과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도 입을 모아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경제만 살린다고 세상의 어둠이 걷히겠습니까? 성장과 소비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술과 욕구가 얼마나 치명적으로 자연을 파괴하며 생태계를 죽음으로 몰아가는지 태안반도의 기름유출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였습니다. 생태계의 죽음은 곧 인간 생명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의 훼손이 지구 대기권에 큰 변화를 초래하여 온난화를 촉진하고, 갈수록 빈도가 잦아지는 기상이변 현상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불러오는지. 지난 여름에 우리는 온몸으로 체험하였습니다. 인간들의 어설픈 정책 실패와 무책임한 일처리는 더 큰 어둠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이런 겉으로 드러난 어둠보다 더 큰 어둠이 있습니다. 빛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빛을 보려고조차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어둠의 근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참된 빛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참 빛입니까?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그분께서 어머니 마리아께 믿고 맡기셨듯이 우리도 오늘은 그분께 믿고 맡기면 됩니다. 그분이 오신 이 시각에 우리 입에서 세상을 향한 모든 성토와 비판과 한탄과 변명의 소리를 거두고 침묵 중에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계신 그분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우리들의 오만과 허풍을 용서 청하며 겸허하게 머리 숙여 경배합시다. 그리고 천사들의 찬미 소리에 맞추어 우리 영혼의 찬가를 함께 부르면 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2007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 강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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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5 01:32
[서한] 2007년 성탄절 교구장 사목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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