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할머니는 혼자 사시는 분이고 몸도 불편하여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분인데 정신 차릴 사이도 없이 쏟아져 들어온 물결 때문에 문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냉장고 위에 올라앉아서 가슴까지 불어 올라오는 물속에 갇혀 있다가, 물이 빠진 다음에야 겨우 빠져나오실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수마가 모든 것을 다 순식간에 앗아가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릇이며 수저며 옷가지며 가구며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갔거나 쓰레기 더미에 휩싸여 버려 쓸모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흙탕물이 고였던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벽만이 덩그렇게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혀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런 비극을 경험하는 이들은 얼마나 당혹스럽고 하늘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비참한 광경 가운데서도 온 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어 흙탕물을 퍼내고 수재 쓰레기들을 치워내는 군인 장병들, 수재민을 대신하여 빗물에 젖어버린 가재도구들을 깨끗이 정리하는 자원 봉사자들, 이들의 땀방울 속에 희망이 엿보였습니다. 교형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고통 중에 있는 형제들을 위하여 여러분의 관심과 연민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작은 형제 중 하나에게 해 드리는 것이 곧 예수님께 해 드리는 일입니다. 이미 전국 각 교구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형제적 연대 안에 물심양면의 성의 표시를 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움직여주고 계십니다. 제주 교구로서는 비축 중이던 사순시기 사랑의 헌금 전액을 이미 전액 제주도지사에게 전달하여 이재민들을 위하여 사용해 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수재의 피해 규모는 너무 큽니다.
이번 기회에 동향의 형제자매들을 향한 여러분의 형제애가 더욱 큰 결실을 맺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형제를 소중히 여기는 여러분에게 풍성히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07년 9월 21일
천주교 제주 교구
강 우 일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