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보아라!’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희망을 걸었던 모든 제자에게 앞이 안 보이는 낭떠러지였습니다. 그들 눈앞에는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허공밖에 없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의 세계인 무덤이었습니다. 그나마 무덤을 찾아 나선 이는 여인들뿐이었고, 열두 제자는 무덤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세계, 망각의 세계, 암흑의 세계에 다가가기 싫었을 것입니다. 무덤은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맛보았던 행복의 끝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가슴 뿌듯한 하느님의 나라, 그분과 함께 나누었던 꿈이 송두리째 사라짐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굶주린 이들이 배불리 먹고, 권세 있는 교만한 자들이 내쳐지고, 비천한 이들이 들어 높여지는’ 꿈이 산산조각 난 현장이기에 그곳에 가기 싫었을 것입니다.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도 슬픔과 절망 속에서 그분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리고 예를 갖추기 위해 그 시신에 향료라도 발라드리러 갔던 것입니다.
그런 여인들에게 놀라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기억은 여인들에게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기억으로 생기를 되찾은 여인들은 사도들도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기억은 제자들을 좌절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억을 잃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기억을 잃지 말라고 빵을 쪼개어 당신 몸이라고 나누어 주셨고, 포도주를 돌리며 당신 피라고 마시게 하셨습니다. 기억은 어제도 오늘도 역사 속에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느님의 구원과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입니다. 기억은 우리 안에 2천 년 전의 예수님과 오늘 살아계시는 주님을 결합하는 관문입니다. 기억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통로입니다. 기억은 과거의 오류를 수정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기준치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오늘 다른 나라를 원조할 능력이 있는 34개 OECD 회원국 중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이 자리는 과거 이 땅의 우리 선조와 선배들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인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빼앗긴 들에 봄이 오길 기다리며 온몸으로 항거한 이들, 재산을 수탈당하고 자유를 빼앗기며 강제노역에 끌려간 이들, 몸과 마음을 짓밟히며 인생을 도륙당한 이들, 고향을 쫓겨나 남의 나라 땅에서 유랑민으로 살아도 언젠가 돌아갈 날을 꿈꾸고 버티어 온 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선조들의 아픔과 분노와 한이 오늘 우리의 자유와 부와 긍지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강대국 간의 거래로 갑자기 그어진 남북분단은 이 땅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와 슬픔과 미움과 대립을 가져왔습니다. 몇백만 명의 동포들이 목숨을 잃고, 가족이 생이별하고 다시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아직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가족이 찢어져 슬픔과 울분과 그리움에 사무쳐 잠 못 이루고 있습니다. 제주 땅에는 밖에서 들어온 이념 투쟁 때문에 우리 부모, 형제, 이웃들이 수없이 죽어나가고 도외로 탈출하거나 연좌제에 걸려 평생을 오그라들어 살았습니다.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 역사의 어둠과 그늘을 우리는 망각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생생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비극을 하루빨리 종결하고 다시는 재현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군사 독재 치하에서 수많은 이들이 폭행과 고문, 협박과 억압에 짓눌리며,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하고, 학자들도 언론도 침묵을 강요당하는 가운데,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만 억울한 옥살이를 강요당했습니다. 자유와 진실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젊은이들, 양심수들 덕분에 오늘 우리는 옛날보다는 훨씬 더 나은 자유와 인권을 누리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기억들을 상실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그 옛날의 억압과 침묵의 세상으로 복귀하는 수모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합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격과 인권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존엄하고 숭고합니다. 국가는 이 국민의 인권을 지키고 봉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역사 속의 국가들은 자주 국민 위에 군림하고 통치자들은 국민을 자기 권력의 소유나 부속품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본말의 전도를 바로잡는 것이 민주주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입니다. 국가가 바로 서고, 국가가 저지른 오류가 시정되려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억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아이들의 꽃다운 생명과 시민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2년이 다 되어가도 아무것도 밝히지 않고 있는 국가의 무책임과 태만을 바로잡으려면, 국민 모두가 그날의 충격과 의문과 아픔을 속속들이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적 치매에 빠지지 않고 우리 기억이 힘을 발휘하려면 우리 모두 투표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시 갈리래아로 부르십니다. 생전에 함께 살고 함께 걷고 함께 하느님 나라를 위해 열정을 불태우던 곳으로 부르십니다. 악의 권세에 승리하신 주님이 함께 계시니 분발하여 옛 기억을 되살려 다시 시작하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관한 기억과 함께 우리 선조, 우리 형제자매, 우리 동료들에 대한 기억을 각인하며 오늘 주님과 함께 이 땅에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주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16년 3월 27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
강 우 일
제주 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