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호주 WYD 참가후기 (돌아온
탕자)
하귀본당
고 은 상
WYD를 갖다와서의 느낌과 생각이 엄청나게 많지만 가장 핵심적인 내용만 적어보겠습니다. ○. 떠나기 전의 나 나는 성당을 아주 독실하게 다니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는 정말 성당을 열심히 나갔고, 주님을 나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모시곤 했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면서 보다 많은 사람과 세계를 접하면서 서서히 나에 대한 악마의 유혹이 시작되었다. 그 유혹은 바로, 우리가 유일신으로 섬기고 있는 주님을 뭔가 객관적으로 분석하려 드는 오만한 자들이 쓴 책. 또는 주님과 주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얘기나 책들. 지금 다 구체적으로 나열하기엔 좀 벅차지만 성서를 위대한 말씀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하나의 텍스트로 여겨서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이 전지전능 하시고 공평하시며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는가?’와 같이 어처구니 없는 질문에 대해서 그럴듯한 포장과 예를 들어서 현혹하려는 자들. 내가 머리 큰 척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성당 사람들 끼리 다투고, 상처받고, 서로 없을 때 남 얘기하는 사실들. 그리고 가장 내가 멍청했던 것은 그런 이유로 차라리 성당 나갈 바에는 혼자 마음속으로 기도하겠다고 하는 그런 오만한 생각. 즉, 악마의 유혹에 빠져서 하느님과의 대화에서의 하느님의 응답을 내가 스스로 정해버리는 그런 큰 실수를 저질렀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세계청년대회에 신청을 해놓았으니, 한번 가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 순간에도 ‘WYD를 개최할만한 자금이면 굶주린 자를 한 명더 살리지 뭐터래 일을 벌렴신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WYD기간을 지내는 동안 악마의 유혹으로 인해 생긴 여러 가지 의문점들과 나의 불신들은 정답을 찾게 된다. ○. 홈스테이 우리는 브리즈번에 있는 켄모어 성당에서 잠시 머물렀고, 그 성당 신자들의 집에서 삼삼오오 홈스테이를 몇 일간 하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WYD를 보름가까이 참여하면서 현지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것이 가장 많은 영적 체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집의 아저씨는 농부였고, 아줌마는 원주민 출신의 주부였다. 내가 이들과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대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영어 못해서 말 많이 못한 것에 대한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색하지 않은 평온한 침묵 속에서 교감으로 사람의 감정을 단단하게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창피하긴 하지만 마지막 켄모어 성당에서의 미사 때 앞에 나가서 율동을 하는데 맥아주머니가 마치 우리 외할머니처럼 나를 기특하게 쳐다보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오려고 했는데 우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 입술 꽉 물고 천장만 보며 죄 없는 옆구리 살만 정말 많이 꼬집었다.
홈스테이를 끝낸 후의 얘기지만 우리조 조장인 실비아 누나가 나에게 소개해준 토마스 머턴의 ‘고독속의 명상’이란 책을 보면서 내가 누나한테 정말 괜찮은 책이라고 ‘고은상 비판서가 부제였으면 좋겠다’ 라고 했을 정도로 감명을 받았던 책이 있다. 거기의 내용에도 보면 하느님과의 대화를 원할 때 자꾸 언어를 가지고 말을 포장하거나 합리적으로 하려고 짜맞추기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보다는 침묵 속에서 느끼는 방식으로 하느님과의 대화를 시도해야 진정하게 주님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우리 교구 분들이(김석주 신부님 또한) 특히 브리즈번 홈스테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비교적 더 큰 것은 많은 말을 주고 받아서가 아니라 침묵 속의 교감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한다.
○. 거리로 쏟아진 세계의 많은 청년들
소제목 그대로 세계의 주님을 모시는 청년들은 정말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뜨거운 함성으로 표현하며 길거리 행진을 하던 장면을 보면서 근원을 파악할 수 없는 힘 같은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 힘은 성령이었다고 본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의 산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WYD할 바에 이웃이나 도와주면 안되나?’ 라는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은 자연스럽게 피부로 느꼈다. 힘을 받은 수 많은 세계 청년들이 산 증인이 되어 이웃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고민해결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객관적인 듯이 말을 포장하여 하느님 혹은 예수님에 대해서 논하는 사람들과 많은 책들 때문에 마음에 흔들림이 있었다고 했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가 주된 강의 내용이었던 한 주교님의 강의는 역시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해주셨다. 1. 움직이지 않는 움직이는 자 2. 사물은 움직인다. 3. 움직이는 사물은 그것을 움직이는 자에 의해서 움직인다. 4. 움직이는 자의 무한 회귀는 불가능하다. 5. 따라서, 모든 움직임을 시작하는 움직이지 않는 자가 존재한다.이 존재가 신이다. 정말 그 강의는 멋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분이 하도 이성적으로 주변사람들이 주님에 대한 의문을 제기 해서 그가 이성적인 논리로서 그것을 증명했었다고 피상적으로 듣긴 했는데,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내가 고민 혹은 궁금증으로 여겼던 것들이 내가 누구한테 뭐냐고 물어보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답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 7은사 교황님께서 말씀의 전례를 하러 배타고 오신 날이었다. 우리 홈스테이의 아들의 친구 재훈이, 태웅이가 거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바랑가루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재훈이의 이름표에 비둘기 모양의 뭔가가 3~4개 정도 있는 것이었다. 7은사였다. 재훈이가 하나 뽑으라고 하니까 무심코 빨간 비둘기를 집었는데. 오, 저런! ‘주님을 두려워 하라’가 나온 것이었다. 역시나 나 나름대로 머리 큰 척 단정 지어 버리고, 주님의 뜻을 내 멋대로 규정지어 버린 오만한 나에 대한 주님의 경고였으리라. 나는 ‘그거 참 신통하네’하면서 주님께 ‘네!’라고 대답했다. ○. 이제는 살아가야 합니다 김석주 신부님께서 클럽 공지사항에 올린 글 중 일부분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WYD가기 전의 나와 WYD참석 중의 나를 담았을 뿐이지 WYD후의 나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단지 지금은 이렇게 생각했으니 이렇게 변하고 싶다는 생각만 할뿐. 많이 느꼈으니까 이제는 살아가야 할 때임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도 아무 생각 안하고 그냥 살아가는 것과 생각을 치밀하게 해놓고 살아가는 것은 같지 않을 것이다. 특히, 순례를 떠나기 전의 사탄으로 인해 시험에 들 뻔 했던 것에 대한 명쾌하고 밝은 답을 얻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쁜 일이며 잔치를 열일이 마땅하다. 빨리 뒷풀이를 하면서 술 한잔 기울였으면 좋겠고, 순례를 다녀온 모든 분들이 생각하고 느낀 것을 가지고 참되게 살아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