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도 제주 교구 사목교서
“인간과 자연에 평화를
이루는 소공동체”
I.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의 모습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비슷하게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하느님을 닮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존귀합니다. 남자도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고 여자도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새 생명도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가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며, 높고 낮음이 없고 지배하거나 지배당하는 사이가 아니라 사랑으로 더욱 하나가 되고 성숙됩니다. 남편과 아내와 자녀가 이루는 가정은 하느님의 가족입니다.
가정은 하느님 닮은 이들을 탄생시키고, 양육하고, 성장케 하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더욱 하느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못자리입니다. 가정이 훼손되거나 무너지면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헝클어집니다. 가정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지켜내야 할 최고의 보석이고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가정에서 사람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면서 자신의 인격을 성숙시키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가정을 떠나서 사람은 생명과 존재가 위축되고 삭아 들어갑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가정이 상처 입고 가족 구성원들이 힘들어 하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가정을 살리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2. 하느님은 빛, 물과 땅, 온갖 풀과 과일나무, 물고기와 새들, 온갖 짐승들을 만드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다음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무생물도, 생물도, 식물도 동물도, 모두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이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다스리라는 말씀은 멋대로 짓밟거나 훼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파괴하고 멸종시키지 말고, 하느님을 대신하여 지키고 보호하여 지속되게 하고 번성하게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현대의 기술문명은 자연을 끊임없이 훼손하고 멸종시켜왔습니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생태계가 교란되고 먹이사슬이 끊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인간도 생태계의 질서 안에서만 생존이 가능합니다. 하느님이 설계하신 생태계의 질서를 멋대로 왜곡하고 조작하는 것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생태계의 질서를 지키면서 다른 피조물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탐욕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모든 생물, 동물, 식물의 공존과 공영을 배우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해야 하느님의 섭리에 역행하지 않습니다.
3. 하느님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낙원을 주셨는데 인간은 자신의 오만과 탐욕 때문에 이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은 낙원의 나무 열매들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음에도 하느님께서 따 먹지 말라고 하신 동산 한가운데 나무 열매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배가 고파서 먹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처럼 되고 싶어서, 슬기롭게 되고 싶어서 따 먹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지력과 능력을 자랑하며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습니다. 하느님 자리에 올라서고 싶은 오만이 욕심을 부풀게 하였습니다. 인간의 오만은 하느님께서 새기신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렸습니다. ‘자연환경은 우리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원료 이상으로 소중한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이러한 자연에는 그것을 무분별하게 착취하지 않고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한 목적과 기준을 알려 주는 공식이 담겨 있습니다’(진리 안의 사랑 48항). 무생물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생태계의 설계자이신 하느님이 심어놓으신 공식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인간의 기술을 무비판적으로 치켜세우며 하느님을 따돌리고 자연을 단순히 인간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만 취급하고 멋대로 착취하는 것은 자연도 파괴하고 우리 후손의 미래도 위협하는 일입니다. ‘완전한 인간 발전을 위한 계획들은 차세대를 유념해야 하고, 환경, 법, 경제, 정치, 문화의 다양한 분야를 고려하면서 연대와 세대 간의 정의를 드러내야 합니다’(진리 안의 사랑 48항).
세상의 참된 발전은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이 올바른 관계를 맺고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에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섭리에 겸손한 자세로 순응하고, 하느님의 작품인 자연에 대한 존중과 경외심을 잃지 않을 때, 세상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자본주의가 유인하는 무분별한 과잉 생산과 소비를 이어가기 위해 한없는 에너지를 추구합니다. 에너지의 무한 증대를 요구하며 인류의 생명과 생존을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리는 핵발전의 모험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노아와 롯때의 일을 상기시키며 우리의 회심을 촉구하십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루카 17,27-28)
지속 가능한 참된 발전을 이루고 하느님께서 태초에 내려주신 복을 이어가려면 우리는 회심을 향한 주님의 초대에 순종하며 우리들의 생활 스타일을 바꾸어가야 합니다.
2013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제주 교구 주교
강 우 일